[짬] 첫 자전에세이집 낸 전후석 감독
누구나 그렇듯, 살다보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만남의 순간이 있다.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의 이야기를 발굴해낸 다큐멘터리 <헤로니모>로 나라 안팎에 이름을 알린 전후석(조셉 전·38) 감독의 경험은 누구보다 극적이고 운명적이기까지 하다.
“아이 엠 코리안. 마이 그랜파더 케임 히어.”(나는 한국인이에요. 할아버지께서 여기로 이민했어요.) 2015년 12월28일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그가 휴가 여행으로 쿠바 아바나 호세 마르티 공항에 도착했을 때 호스텔의 안내원으로 마중 나온 중년의 아시안 여성에게 ‘중국계냐’고 묻자 돌아온 뜻밖의 대답이다. “파트리시아 임, 그 만남이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전 감독이 최근 펴낸 첫 자전에세이 <당신의 수식어>(창비교육)의 들머리에서 털어놓은 ‘헤로니모’와 인연의 시작 순간이다. 파트리시아 임은 바로 ‘헤로니모 임’(한국 이름 임은조)의 딸이었다.
지난 13일 서울 인사동에서 그를 만나 ‘더 큰 세상을 향한 전후석의 디아스포라 이야기’를 부제로 책을 쓰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2015년 뉴욕에서 변호사 활동중 여행
아바나 공항 도착 우연히 만난 한국인
전설적 쿠바 한인 ‘헤로니모 임’의 딸
3년간 다큐 ‘헤로니모’ 찍어 국내 개봉
최근 제작기 담은 ‘당신의 수식어’ 펴내
“디아스포라는 생명력 넘치는 수식어”
“그 다음날 파트리시아를 따라서 아바나 외곽의 바히아시에 사는 어머니(크리스티나 장)를 만나러 갔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께서 대뜸 앨범을 꺼내와서는 2006년 별세한 남편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처음 알게된 헤로니모의 신비한 일대기에 저도 모르게 빠져 들었죠.”
이미 알려진대로, 헤로니모 임은 1926년 멕시코 유카탄반도에서 쿠바로 이주해온 한인 부모(임천택·김귀희)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바나법대 시절 동기인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공산당에 가입해 쿠바 사회주의 혁명에 참여한 그는 체 게바라 산업부장관 시절 4년간 함께 활동하는 등 고위직을 섭렵하며 9개의 훈장을 받았다. 1988년 퇴직 뒤 작은 도시 기테라스 시장을 지낸 그는 1995년 광복 50돌 기념 ‘한민족대축전’에 초청받아 난생 처음 고국 한국을 방문한 뒤 한인 정체성을 자각하고 말년까지 쿠바 한인 공동체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그 자리에서 소형 카메라로 사진과 자료들을 찍기 시작한 그는 “크리스티나, 남편분께서 보여 주셨던 한국의 뿌리와 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모든 업적, 세상에 알려질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약속했다. “그 다음날에도 파트리시아를 따라 바라데로시에 사는 헤로니모 형제들까지 만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어요. 알 수 없는 희열과 떨림으로 오랫동안 심장도 두근거렸죠. 어쩌면 그 느낌이 지금까지 저의 ‘디아스포라 정체성 찾기’ 여정을 이끌어온 힘인듯 해요.”
실제로 이후 4년간 그의 삶은 변호사에서 영화감독으로 바뀌었다. 그는 1984년 부친의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과정 유학중에 태어나 시민권을 갖고 있었으나 4살 때 귀국해 19살 때까지 서울에서 자랐다. “고1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봤는데 키딩 선생님의 ‘카르페 디엠’에 용기를 얻어 미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마침 고3때 아버지의 교수 안식년이어서 로스앤젤레스로 온가족이 함께 떠날 수 있었거든요.”
2003년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에 입학한 그는 첫 교양 수업인 ‘영화의 역사’를 들으며 영화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특히 프랑스계 미국인 교수가 수업에서 소개한 한국 영화 <박하사탕>이 강한 동기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는 이듬해 시애틀에서 열린 재미한인대학생총회에 참석해 미 전역에서 모인 한인 대학생 250여명과 ‘1992년 엘에이 폭동 사건’ 등에 대해 토론을 하면서 처음으로 ‘한인 정체성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로스쿨로 방향을 틀었다. 대학을 마친 뒤 2년간 다양한 세상 경험을 하고 싶었던 그는 2007~08년 연변과학기술대의 홍보 담당으로 취직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차원이 다른 한인공동체였어요. 면적만 해도 한국의 절반으로 넓었고 한인 이주의 역사도 길잖아요?”
6개월 남짓 중국 체류를 시작으로 그는 전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한인들을 만났고 책에 그 기억을 소개해 놓았다. ‘중국 연변의 일수와 수청의 순박한 표정으로, 상파울루 봉헤찌로의 에스더와 수정 누나의 세련된 모습으로, 함부르크에서 멋진 춤을 추던 재독 교포 선미와 창환 형 부부의 환대로,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잔디밭에 누워 기타를 치던 데이비드와 샘의 자유로움으로, 광화문에서 인권 퍼포먼스를 하던 탈북자 친구들의 행진으로, 샌디에이고에서 무대에 올라 정체성의 혼란을 랩으로 표현하던 한인 입양아 대니얼의 절규로, 케이프타운에서 붉은 악마 유니폼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치던 남아공과 호주 교포 친구들의 포효로, 요르단의 허름한 지하에 모여서 잔잔하게 찬송가를 부르던 한인 선교사들의 고백으로.…’
하지만 그가 쿠바에 가서 우연히 헤모니모를 알게 되기 전까지 ‘디아스포라’는 그의 수식어가 아니었다고 했다. “뉴욕 코트라지사의 변호사로 일하며 한인신문에 법률정보나 칼럼을 기고했는데, 2015년 무렵 한국 사회 내부에 건강한 가치관이 결여되면서 ‘헬조선 현상’이 나온 것이 아닐까라는 논조로 글을 썼다가 악플 세례를 받았어요. 진짜 한국인이 아니면서 뭘 아느냐는 식이었죠.”
전 감독은 “생소하고 왠지 모를 위화감을 주던 디아스포라의 개념에 생명을 불어넣은 게 바로 고 헤로니모 임 선생의 선한 눈빛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후반 6명 미국 친구들과 다큐 제작에 나서 1년간 미 전역에서 쿠바 한인 관련 자료를 조사한 뒤, 4개 나라 20여개 도시 70여명을 만나 채록했다. 2018년 2월 쿠바 마지막 촬영에서는 1921년 첫 한인 도착 항구도시인 마나티에 가서 헤로니모 임이 세운 한인기념비를 찍었다. 한인디아스포라의 상징인 이 장면이 영화 <헤로니모>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책에서 그는 3년만에 완성한 다큐 필름을 들고 2019년 한국에 들어와 배급사 10여곳에서 퇴짜를 맞았다가 극적으로 커넥트픽쳐스를 만나고, 그해 광복절 특집으로 <한국방송>에서 먼저 방송되면서 마침내 국내 극장 개봉에 성공하고, 청와대에 초청받아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제작기를 소개하면서 함께 감격했던 순간까지를 흥미롭게 소개해놓았다. 덕분에 2020년 1월 개봉관 종영 때까지 <헤로니모>는 1만6천명 관람 기록을 세웠다.
‘어느덧 내게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학계에서 통용되는 딱딱한 역사적 용어가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얼굴로 거듭났다. 조국 밖에 있는 나와 다른 한인들을 지칭하는 명사에서 디아스포라적, 경계인의 사유와 기능을 의미하는 동사가 되었다.’
이제는 ‘디아스포라 스토리텔러’라고 자신을 명명하게 된 전 감독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당선된 한인 연방하원 4명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초선>으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을 두드릴 참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지난 8월13일 서울 인사동 코트의 오동나무 정원에서 만난 전후석 감독이 자신의 첫 책 ‘당신의 수식어’를 소개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아바나 공항 도착 우연히 만난 한국인
전설적 쿠바 한인 ‘헤로니모 임’의 딸
3년간 다큐 ‘헤로니모’ 찍어 국내 개봉
최근 제작기 담은 ‘당신의 수식어’ 펴내
“디아스포라는 생명력 넘치는 수식어”

전후석 감독이 ‘나는 헤로니모입니다’라고 쓰인 다큐영화 <헤로니모> 기념 셔츠를 입은 채 첫 에세이 책에 서명을 하고 있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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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쿠바 아바나 공항에서 전후석 감독이 안내원으로 처음 만난 헤로니모의 딸 파트리시아 임(왼쪽). 그날 낡은 차(오른쪽)를 몰아 그를 숙소로 태워준 파트리시아의 제안으로 ‘헤로니모 임’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다큐 <헤로니모>가 탄생할 수 있었다. 전후석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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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처음 만난 전후석 감독에게 2006년 별세한 남편 헤로니모 임의 일대기를 들려준 크리스티나 장. 다큐 <헤로니모>에서 17살 소녀 때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연애담을 들려주는 장면이다. 전후석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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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크라우드펀딩으로 2만 달러의 제작비를 모은 전후석(뒷줄 오른쪽 세째)은 동생 의석(맨오른쪽) 등 6명의 제작팀을 꾸려 다시 쿠바로 갔다. 9남매의 장남이었던 헤로니모 임의 동생 가운데 마르타 임(앞줄 왼쪽), 프리미티보 임(앞줄 오른쪽)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전후석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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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쿠바한인회 지도자였던 헤로니모 임이 부모를 비롯해 쿠바 첫 한인 이주민들이 도착했던 마나티항에 세운 한인 이민 80돌 기념비. 다큐 <헤로니모>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정길화 전 <문화방송> 피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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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국내 극장 개봉한 다큐 <헤로니모>의 포스터. 주인공인 헤로니모 임(임은조)의 생전 사진을 배경으로 넣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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