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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박사논문 첫 책 고립된 노동자 주목

등록 2021-08-20 05:00수정 2021-09-24 14:26

[한겨레Book] 나의 첫 책 : 김동춘

전쟁터 다름없던 사회운동 현장
부채의식에 계급·신자유주의 관심
이후엔 한국전쟁 등 현대사 연구
노동 문제 관심은 지금까지도 유효
2017년 한겨레가 연 좌담에 참석 중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2017년 한겨레가 연 좌담에 참석 중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나는 1991 년에 소설가 박태순 선생과 공동저작인 <1960 년대 사회운동 >, 그리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단독저서 한 권을 내기도 했다 . 그러나 박사논문을 수정 보완한 < 한국사회 노동자연구 >(1995) 가 아무래도 내 첫 책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 박사논문을 넘어서는 책을 쓰면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문제의식이나 열정이 살아 있는 청년기에 , 연구에 집중해서 박사논문을 쓰기 때문에 이후에는 그 이상의 작품을 쓰기 어렵다는 말일 게다 . 내가 < 한국사회 노동자연구 > 이상의 책을 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

5·18 직후 학생운동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노동 현장이나 사회운동에 투신하는 일을 ‘ 마땅히 가야 할 ’ 길로 생각했는데 , 나는 졸업을 ‘ 택하고 ’ 석사과정을 마치고 군에 갔다 . 이후 군에서 제대한 후 교사로 복직하여 6 월 항쟁 직후 단위학교에서 교사운동을 시작했다가 , 또다시 박사과정 진학을 핑계로 ( 물론 전교조 대량해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나 ) 사직하고 재야연구소인 역사문제연구소에 상근했다 . 어제까지 함께 활동하던 동료들이 잡혀가고 해고되는 것을 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

그러나 좌파 이론을 공부했던 ‘ 진보 ’ 사회과학 연구자로서는 1990 년 초반 시기는 혼란 , 당혹 그 자체였다 . 이론적으로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관심이 커졌지만 , 사회운동 현장은 분신자살 , ‘ 유서대필’ , 식칼테러 등이 뒤엉킨 거의 전쟁터였고 , 다른 편에서는 전향과 변신의 목소리가 < 조선일보 >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

‘ 제도권 ’ 대학원에서 어떤 주제의 학위논문을 쓸 것인가는 일생일대의 어려운 선택이다 . ‘ 자리 잡는 데 ’ 유리한 , 시장성이 있는 주제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 내가 노동 연구를 하려고 한 것은 20 대에 두 번이나 ‘ 도망간 것 ’ 에 대한 부채의식도 있었지만 , 사회학의 전통적 주제인 계급문제를 다루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 당시 신자유주의 이론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 그래도 경험적 연구를 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 서구 좌파 이론의 대리전이었던 사회구성체 논쟁에 신물도 났고 , “ 조사하지 않은 사람은 발언권이 없다 ” 는 마오쩌둥의 말도 귓전에 간질거렸다 .

그래서 1991, 1992년 두 해 여름에 인천과 마산, 창원 등 수십 곳의 노조를 방문해서 조합원 대상 설문조사를 하고 , 노조간부 면담조사도 했다 . 조사를 통해 나는 한국의 자본주의와 노동자 계급이 이미 심각한 전환기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래서 애초의 생각과 달리 , 이 논문의 제목과 결론은 ‘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 ’ 이 되었다 . 전통좌파 , 노동계급 주체화를 위해 청춘을 바친 ‘ 학출 ’ 운동가들이 나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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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논문에서 나는 한국 산업구조 변화, 세계화와 자본의 지구적 이동 등을 충분히 감안하지 못했다 . 그러나 한국 노조운동이 기업별 노조주의로 고착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그때만 하더라도 학부생이나 일부 노조활동가들도 이 책을 읽었지만 , ‘ 전투적 경제주의 ’ 로는 노동운동의 미래가 없다는 내 주장을 들어 줄 노동운동 그룹은 거의 없었다 .

결국 나는 세 번째 도망을 갔는데 , 이번에는 연구주제와 활동영역 전환이었다 . 창립 때부터 관여하던 참여연대 내에 참여사회연구소를 만들었고 , 시민운동을 ‘ 전도 ’ 하는 역할을 했고 ,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역설하는 강연도 많이 다녔다 . 1996 년부터 한국사회의 심층에 들어가기 위해 학부시절부터 계속 해 오던 한국현대사 공부를 연장해서 한국전쟁 연구를 시작했다 . 2000 년 < 전쟁과 사회 > 를 출간하니, 학계보다는 피학살 유족들이 나를 더 필요로 했다 . 뜻있는 동료들과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시작했다 .

그 이후 노동관련 논문은 거의 쓰지 않았으나 , 나는 여전히 국내외 사회정치적 의제를 노동 문제와 연관시켜 본다 . 1999 년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도 만들었고 , ‘ 세계화와 노동 ’ 강좌도 계속 열었고 , 35 년째 노동 관련 신문 스크랩도 계속하고 있다 . 나를 노동 연구자로 기억하는 노조에서 간혹 강의 요청도 온다 .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그리고 다음 책들

전쟁과 사회: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돌베개( 2000)

한국전쟁을 역사사회학적으로 접근한 책 . 피난 , 점령 , 학살 등 전쟁기 전투현장 이면의 정치적 현상으로서 전쟁을 조명하며 한국전쟁이 당시의 민중들에게 무엇이었으며 , 오늘의 한국사회에 어떻게 녹아서 지속되고 있는지를 밝혔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 국군과 경찰에 의한 좌익혐의자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을 부각시켰다 .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한국전쟁과 학살 그 진실을 찾아서

사계절( 2013)

2000 년이후 2010 년까지 개인적인 사회참여 활동의 기록 .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운동과 정부의 ‘ 진실화해위원회 ’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과거사 문제의 성격과 그 해결과정의 어려움 , 특히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부딪친 어려움들을 정리했다 .

전쟁정치: 한국정치의 메커니즘과 국가폭력

길( 2013)

해방 후 한국의 국가폭력과 한국의 정치사회를 전쟁정치라는 개념으로 정리한 책 . 국가폭력을 유형화하여 , 가해자와 피해자 , 법 , 그리고 시민사회의 대응에 입체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갈등과 그 전개과정의 특성을 설명했다 .

한국인의 에너지 , 가족주의: 개인의 보호막과 지위상승의 발판인 가족

피어나( 2020)

가족주의 현상을 통해 현대 한국의 근대성을 탐구하고 한국인들의 열정에 담긴 긍정적, 부정적 측면을 조명한 책 . 가족주의는 전근대의 유물이 아니라 생존을 도모하기 위한 생존전략이며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나온 선택이라는 점을 부각시켰고, 한국 현대사가 ‘가족 개인’의 탄생사란 점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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