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
쿠빌라이 칸의 특사, 중국인 최초로 유럽을 여행하다
모리스 로사비 지음, 권용철 옮김 l 사회평론아카데미 l 1만8000원
“1287년 6월23일 나폴리의 시민들은 몽골제국의 통치자 쿠빌라이 칸의 굉장한 수도인 대도(지금의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먼 길을 여행한 아시아인 성직자를 싣고 온 배가 도착하자 깜짝 놀랐다. (…) 저 멀리 떨어진 중국에서부터 유럽에 도착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랍반 사우마의 서방견문록>의 ‘주인공’인 랍반 사우마는 “유럽에 도달한 것이 확인되는 최초의 중국인”이다. 책 제목은 랍반 사우마와 거의 동시대에 유럽에서 중국으로 여행했던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따온 것이다. 마르코 폴로의 유명세에 비하면 랍반 사우마와 그의 저술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여행과 삶에 관한 기록을 남겼지만, 페르시아어로 된 원문은 소실됐고 동료 성직자의 시리아어 번역본만 전해졌다. 게다가 이 번역본은 원문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된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중앙아시아 전문가인 지은이는 이 번역본을 뼈대로 다른 사료와 연구들을 덧붙여 랍반 사우마의 여정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랍반 사우마(원래 이름은 바르 사우마, 랍반은 경의를 표하는 칭호)는 몽골제국 시절, 소수민족 웅구드족 출신의 네스토리우스교(기독교의 한 분파) 성직자였다. 애초에는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하려고 쿠빌라이 칸의 허락을 받아 여행길에 오른다. 하지만 페르시아의 몽골 국가인 일 칸국과 대립관계에 있던 맘루크 왕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고 페르시아에 머물게 된다. 일 칸국의 지배자, 아르군 칸은 서유럽과 동맹 맺길 원했고, 이를 위해 랍반 사우마를 서유럽에 파견한다. 그는 교황 니콜라우스 4세, 프랑스 필리프 4세,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 등을 만나 동맹 제의를 전달하는 한편, 기독교와 관련된 여러 장소와 유물을 살펴본다. 로마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성 베드로) 대성당을 보고는 “이 사원의 크기와 화려함은 묘사할 수가 없다”라고 적었다. 결국 동맹은 성사되지 못했고 그는 페르시아로 돌아와 성직자로서 여생을 보낸다.
랍반 사우마의 기록이 종교적·외교적 측면에 집중돼 있는 점은 다소 아쉽다. 아마 성직자와 사절단이라는 정체성, 시리아어 번역자의 삭제 등이 원인일 것이다. 지은이 역시 “유럽의 풍습과 예식에 대한 동아시아인의 관점을 보여주는 그 시대의 유일한 문헌”이라고 의미부여를 하면서도 “남아 있는 기록이 랍반 사우마가 여행한 장소의 정치, 관습, 물질문화, 일상생활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안타까움을 표한다.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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