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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국의 젊은 저항자들, 연대와 변혁을 외치다

등록 2021-08-20 04:59수정 2021-08-20 09:15

자스커지 노동자와 함께하다 체포돼 ‘사라진’ 친구들
‘더 나은 사회’ 위해 행동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기록
취업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노동자 모습도
2018년 8월 중국 선전시 룽화구에 위치한 룽광쇼핑몰 앞에서 자스커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탄압에 항의하고 시민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는 대학생들. 빨간소금 제공
2018년 8월 중국 선전시 룽화구에 위치한 룽광쇼핑몰 앞에서 자스커지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탄압에 항의하고 시민을 향해 지지를 호소하는 대학생들. 빨간소금 제공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베이징에서 마주친 젊은 저항자들

홍명교 지음 l 빨간소금 l 1만8000원

2018년 말 중국 베이징 외곽의 작은 아파트 안 골방에서 그들을 만났다. 베이징대 마르크스주의학회 회원인 션위쉔, 인민대학 야학동아리 신광평민발전협회 대표인 천커신. 두명 모두 그해 7월 자스과학기술주식유한공사(이하 자스커지)에서 있었던 노동자들의 공회(노조) 설립 투쟁에 연대했던 대학생이었다.

“한국 대학생도 <전태일 평전>을 읽어?”(중국의 진보적 대학생과 활동가들은 <전태일 평전>을 많이 읽는다.)

“흠… 모든 학생이 읽는다고 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 꽤 많이 읽는 것 같아.”

“한국 노동자 운동이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

“현재 상황이 아주 좋다고 할 순 없어. 하지만 다행히 최근 몇년 사이에 조합원 수만큼은 늘고 있어. 특히 비정규직, 청년, 여성의 비중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어.”

그들은 한국 사회운동에 관해 궁금한 게 많았다. 중국의 사회·학생운동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그렇게 몇시간을 물만 마시며 이야기했다. 그 뒤로도 간간이 만남을 이어갔지만, 어느 날 그들은 ‘사라졌다.’ 천커신은 2019년 2월, 션위쉔은 2019년 5월 체포됐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의 지은이는 한국에서 학생운동, 노동조합, 사회운동단체 등에 몸담아온 30대 활동가다. 그는 이 책을 “중국에서 보낸 1년(2018년 3월~2019년 2월)의 여정에 관한 여행기이자 일기, 관찰기”라고 표현했지만, 책의 내용은 주관적 기행문을 훌쩍 뛰어넘는다. 갈수록 커지는 불평등과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상황, 체제비판적 운동에 대한 정부의 탄압 등 중국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르포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중국과 한국의 사회·학생운동 역사와 사상에 대한 진지한 고찰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중국의 ‘젊은 저항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회주의’라는 간판을 걸어놓은 대국에서 일어나는 자본의 탐욕에 맞서 싸우는 청년들”, “중국을 평등하고 자유로우며 민주적인 사회로 변화시키고자 밭을 일구는 사람들”과의 만남에 관한 기록이다.

지은이가 중국에서 보낸 1년은 ‘자스커지 투쟁’의 1년이기도 했다. 용접기 제조업체인 자스커지 선전공장 노동자들은 억압적인 노무관리와 저임금을 해결하기 위해 공회를 설립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베이징, 톈진, 우한 등 각지에서 온 대학생들이 지원단체 ‘자스커지노동자성원단’을 결성해 노동자들과 함께한다. 하지만 이들의 도전은 극심한 탄압에 부딪힌다. “당-국가는 이를 대중운동의 급진화 신호로, 자본가 계급은 자신의 근본적인 이익을 침해하는 위험요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자스커지 투쟁에 연루돼 체포당하거나 가택연금된 학생, 활동가만 132명에 이른다. 자스커지노동자성원단 구성원이 소속된 동아리는 모두 폐쇄됐다. 지은이의 친구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소식이 끊겼다.

자스커지 투쟁이 책의 큰 줄기를 차지하긴 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중국의 ‘변화’를 지향하는 다양한 움직임들도 함께 소개된다.

‘706청년공간’은 베이징 쉐위안로에 있는 대안적 청년문화공간이다. 2018년 10월 어느 날 이곳에서는 ‘실패청년파티’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고 함께 떠들고 함께 좌절하고, 이 ‘뭣 같은 세상’에서 무엇을 도모할 수 있을지 모색해보자”는 게 행사 취지였다. “난 내 또래들이랑 비슷해. 지금 상황 자체가 어려우니까 모든 게 실패지. 이미 명문대생이 아니라서 실패야. 중국에선 베이징대나 칭화대를 나와야 풍족하게 살 수 있거든. 헤헤.” 한 대학생은 ‘네 실패담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명랑하게 대답했다. “취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실패다.”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싶은데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실패청년파티에서 들은 중국 청년들의 이야기는 한국 청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본 청년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영어 공부에 열중하고 취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어렵사리 취직해도 기다리는 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다. ‘996제’(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한다)는 이런 현실의 표현이다.

2018년 10월 706청년공간에서 열린 ‘실패청년파티’ 행사의 홍보 포스터. 빨간소금 제공
2018년 10월 706청년공간에서 열린 ‘실패청년파티’ 행사의 홍보 포스터. 빨간소금 제공

베이징 외곽 피촌에 있는 ‘베이징노동자의집’은 노동자 문화공간이자 풀뿌리 운동조직이다. 농민공(농촌에 호적을 두고 있으면서 도시로 이주해 살고 있는 노동자) 교육운동을 펼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자운동의 가능성”을 고민한다.

실패청년파티에서 만난 따지엔은 당의 정책을 예찬해야 하는 ‘관방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다양한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친구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공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학교에서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주제의 웅변대회, 토론회가 열리면 꼭 참가해 ‘모범학생’인 척한다. “한편으론 모범생으로 살고, 다른 한편으론 지하서클로 사는 거죠.”

인민대학의 신광평민발전협회는 열정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현실의 벽을 보여준다. 협회는 2011년부터 학내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 등을 위한 야학수업을 해왔다. 2014년께에는 30여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는 등 성공 사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점점 참여하는 노동자가 줄기 시작하면서 2018년 결국 야학은 중단됐다. 원인은 ‘악화된 노동조건’이었다. 대학의 인건비 축소 정책 때문에 노동자 수는 줄고 임금은 동결됐다. 노동자들은 너무 바빠 시간이 없거나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어야 했다. 1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하는 불안정 노동자도 많았다.

지은이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우리나라와 아주 다른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청년이나 노동자의 현실은 거의 똑같았다”며 “중국에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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