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시위를 당기는 파울로 코엘료. ⓒ Philippe Cabidoche
파울로 코엘료 지음, 김동성 그림, 민은영 옮김 l 문학동네 l 1만4000원 활 쏘는 세계적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 <아처>는 궁술을 수련해온 그의 체험과 통찰이 담긴 소설이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화살에 실어 멀리까지 전달”하는 활쏘기의 자리에, 목표에 적중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무엇이든 가져다 놓고 읽어도 같은 울림이 생긴다. 전설적인 명궁 ‘진’은 세상의 이목을 피해 산에서 목공을 하며 산다. 진을 꺾고 그 명성을 지우고 싶은 한 ‘이방인’ 궁사가 찾아온다. 실력자다. 40m 거리에 놓인 체리를 깨끗하게 명중시킨 이방인을 데리고 진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잇는 흔들다리로 간다. 쉭-. 20m 거리 복숭아를 관통한 진의 화살. 이제 이방인이 보여줄 차례다. 거리도 가까워지고, 과녁도 커진 셈이다. 그런데 이번 화살은 멀리 빗나가고 만다. 똑같은 자세와 동작으로 활을 쐈음에도. 달라진 건 하나, 유지하지 못한 평정심이었다. 진이 말한다. “화살을 정확하게 잘 쏘는 것과 영혼의 평정을 유지하고 쏘는 것은 매우 다르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활쏘기의 완성을 경쟁으로 삼았던 이방인이 돌아간 뒤, 책의 정수가 열린다. 활을 배우려는 ‘소년’에게 궁도를 전해주는 진. 듣는 이가 아이라는 점이 참 좋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전에 딱 끝날 분량(한국어판 기준 142쪽)에다 투명하고 단순한 언어. 정말 중요한 건 지나치기 쉬울 만큼 ‘무난’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주는 언어. 활, 화살, 표적, 자세, 화살 잡는 법, 활 잡는 법, 활시위 당기는 법, 표적 보는 법…. 이 모든 단계에 앞서 진은 활쏘기를 함께 즐기는 ‘동료’부터 가르친다. 경쟁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표적이지, 다른 궁사가 아니라고. 맞서 싸울 것은 “나의 악습과 자기연민”이다. 비로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다가, 표적이 “늘 멀리 떨어져 있는” 이유에 가닿으면 활쏘기를 볼 때 왜 그토록 능동적인 “우아함”을 느끼는지, 그 신비를 이해하게 된다. “화살이 빗나가더라도 절대로 표적을 탓할 수는 없다. 여기에 궁도의 아름다움이 있다. 상대가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을 변명할 수 없다는 것.” 활쏘기는 운동이자 명상이며, 이 소설 역시 고요히 움직인다. 산꼭대기에서 외치지 않는다. 목수 진처럼 산속에서 좋아하는 나무 깎는 소리만 들리는 듯, 작으나 스스로 넉넉하다. 독자는 이 즐거운 소리를 들을 것이고, 그(궁도)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것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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