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100년, 김수영] ⑬ 꽃
철저한 도시인으로서
자연·전통 멀리했지만
유독 꽃 시어 자주 등장
사물의 고정 관념 아닌
생리·명석성 바로 보고
내용·형식을 한 몸처럼
시 형식 실험으로 확장
경이로웠던 꽃의 사상
반복-변주하는 꽃의 리듬
유작 ‘풀’까지 흔적 남아
철저한 도시인으로서
자연·전통 멀리했지만
유독 꽃 시어 자주 등장
사물의 고정 관념 아닌
생리·명석성 바로 보고
내용·형식을 한 몸처럼
시 형식 실험으로 확장
경이로웠던 꽃의 사상
반복-변주하는 꽃의 리듬
유작 ‘풀’까지 흔적 남아
![글라디올러스 꽃.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글라디올러스 꽃.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40/889/imgdb/original/2021/0815/20210815502149.jpg)
글라디올러스 꽃.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시 ‘구라중화’ 육필 원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시 ‘구라중화’ 육필 원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17/730/imgdb/original/2021/0815/20210815502148.jpg)
시 ‘구라중화’ 육필 원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의 산문 ‘생활 현실과 시’의 육필 원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의 산문 ‘생활 현실과 시’의 육필 원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420/595/imgdb/original/2021/0815/20210815502144.jpg)
김수영의 산문 ‘생활 현실과 시’의 육필 원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문학예술> 1956년 7월호에 발표된 시 ‘꽃’. 전집에는 ‘꽃 2’로 실려 있다. 맹문재 제공 <문학예술> 1956년 7월호에 발표된 시 ‘꽃’. 전집에는 ‘꽃 2’로 실려 있다. 맹문재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95/842/imgdb/original/2021/0815/20210815502147.jpg)
<문학예술> 1956년 7월호에 발표된 시 ‘꽃’. 전집에는 ‘꽃 2’로 실려 있다. 맹문재 제공
![시 ‘꽃잎’의 김수영 육필 초고.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시 ‘꽃잎’의 김수영 육필 초고.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654/imgdb/original/2021/0815/20210815502146.jpg)
시 ‘꽃잎’의 김수영 육필 초고.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오연경 교수. 오연경 교수.](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647/imgdb/original/2021/0815/20210815502145.jpg)
오연경 교수.
꽃잎
1
누구한테 머리를 숙일까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 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 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 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 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혁명 같고
먼저 떨어져 내린 큰 바위 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 같고 2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 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 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3 순자야 너는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
소식을 완성하고 우주의 완성을 건 한 자(字)의 생명의
귀추를 지연시키고
소녀가 무엇인지를
소녀는 나이를 초월한 것임을
너는 어린애가 아님을
너는 어른도 아님을
꽃도 장미도 어제 떨어진 꽃잎도
아니고
떨어져 물 위에서 썩은 꽃잎이라도 좋고
썩는 빛이 황금빛에 닮은 것이 순자야
너 때문이고
너는 내 웃음을 받지 않고
어린 너는 나의 전모를 알고 있는 듯
야아 순자야 깜찍하고나
너 혼자서 깜찍하고나 네가 물리친 썩은 문명의 두께
멀고도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낭비
그 낭비에 대항한다고 소모한
그 몇 갑절의 공허한 투자
대한민국의 전 재산인 나의 온 정신을
너는 비웃는다 너는 열네 살 우리 집에 고용을 살러 온 지
3일이 되는지 5일이 되는지 그러나 너와 내가
접한 시간은 단 몇 분이 안 되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 나의 방대한 낭비와 난센스와
허위를
나의 못 보는 눈을 나의 둔갑한 영혼을
나의 애인 없는 더러운 고독을
나의 대대로 물려받은 음탕한 전통을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의
꽃과 더러워져 가는 화원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오늘도 찾아오지 않는 벌과 나비의
소식을 더 완성하기까지 캄캄한 소식의 실낱같은 완성
실낱같은 여름날이여
너무 간단해서 어처구니없이 웃는
너무 어처구니없이 간단한 진리에 웃는
너무 진리가 어처구니없이 간단해서 웃는
실낱같은 여름 바람의 아우성이여
실낱같은 여름 풀의 아우성이여
너무 쉬운 하얀 풀의 아우성이여
사람이 아닌 평범한 것에
많이는 아니고 조금
벼를 터는 마당에서 바람도 안 부는데
옥수수잎이 흔들리듯 그렇게 조금 바람의 고개는 자기가 일어서는 줄
모르고 자기가 가 닿는 언덕을
모르고 거룩한 산에 가 닿기
전에는 즐거움을 모르고 조금
안 즐거움이 꽃으로 되어도
그저 조금 꺼졌다 깨어나고 언뜻 보기엔 임종의 생명 같고
바위를 뭉개고 떨어져 내릴
한 잎의 꽃잎 같고
혁명 같고
먼저 떨어져 내린 큰 바위 같고
나중에 떨어진 작은 꽃잎 같고
나중에 떨어져 내린 작은 꽃잎 같고 2 꽃을 주세요 우리의 고뇌를 위해서
꽃을 주세요 뜻밖의 일을 위해서
꽃을 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시간을 위해서 노란 꽃을 주세요 금이 간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하얘져 가는 꽃을
노란 꽃을 주세요 넓어져 가는 소란을 노란 꽃을 받으세요 원수를 지우기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우리가 아닌 것을 위해서
노란 꽃을 받으세요 거룩한 우연을 위해서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비뚤어지지 않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소음이 바로 들어오게
꽃을 찾기 전의 것을 잊어버리세요
꽃의 글자가 다시 비뚤어지게 내 말을 믿으세요 노란 꽃을
못 보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떨리는 글자를 믿으세요 노란 꽃을
영원히 떨리면서 빼먹은 모든 꽃잎을 믿으세요
보기 싫은 노란 꽃을 3 순자야 너는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잠시 찾아오기를 그친 벌과 나비의
소식을 완성하고 우주의 완성을 건 한 자(字)의 생명의
귀추를 지연시키고
소녀가 무엇인지를
소녀는 나이를 초월한 것임을
너는 어린애가 아님을
너는 어른도 아님을
꽃도 장미도 어제 떨어진 꽃잎도
아니고
떨어져 물 위에서 썩은 꽃잎이라도 좋고
썩는 빛이 황금빛에 닮은 것이 순자야
너 때문이고
너는 내 웃음을 받지 않고
어린 너는 나의 전모를 알고 있는 듯
야아 순자야 깜찍하고나
너 혼자서 깜찍하고나 네가 물리친 썩은 문명의 두께
멀고도 가까운 그 어마어마한 낭비
그 낭비에 대항한다고 소모한
그 몇 갑절의 공허한 투자
대한민국의 전 재산인 나의 온 정신을
너는 비웃는다 너는 열네 살 우리 집에 고용을 살러 온 지
3일이 되는지 5일이 되는지 그러나 너와 내가
접한 시간은 단 몇 분이 안 되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 나의 방대한 낭비와 난센스와
허위를
나의 못 보는 눈을 나의 둔갑한 영혼을
나의 애인 없는 더러운 고독을
나의 대대로 물려받은 음탕한 전통을 꽃과 더워져 가는 화원의
꽃과 더러워져 가는 화원의
초록빛과 초록빛의 너무나 빠른 변화에
놀라 오늘도 찾아오지 않는 벌과 나비의
소식을 더 완성하기까지 캄캄한 소식의 실낱같은 완성
실낱같은 여름날이여
너무 간단해서 어처구니없이 웃는
너무 어처구니없이 간단한 진리에 웃는
너무 진리가 어처구니없이 간단해서 웃는
실낱같은 여름 바람의 아우성이여
실낱같은 여름 풀의 아우성이여
너무 쉬운 하얀 풀의 아우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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