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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자유롭게 통제하기’ 가능케 하는 이중 권력

등록 2021-08-13 07:06수정 2021-08-13 09:44

국내 학자가 고유 개념 제시
학제적 연구로도 이목 끌어
환경·정신 관리하는 두 권력
자유-통제 뒤섞인 ‘관리사회’

기계, 권력, 사회
인터넷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박승일 지음 l 사월의책 l 2만2000원

2010년 6월, 구글의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마케팅 책임자였던 이집트의 와엘 고님은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청년 칼리드 사이드를 추모하고 연대를 호소하는 취지로 “우리 모두가 칼리드 사이드”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추모와 연대의 목소리는 인터넷을 타고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듬해 이집트 시민들은 30년 동안 독재를 이어온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냈다. 당시 고님은 “만약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인터넷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뒤 그는 테드(TED) 강연에 나와 과거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사회를 해방시키고 싶다면, 우리는 먼저 인터넷을 해방시켜야 한다.”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기술혁명이 만든 시대를 맞이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개인 정보 유출과 데이터 악용, 사용자 감시, 여론 조작, 가짜뉴스 등 거대 세력, 곧 정부와 기업이 행사하는 부정의한 권력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대체로 ‘누군가 저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그들로부터 자유를 되찾아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터넷을 해방시키자”는 고님의 두번째 말도 여기에 대응한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예컨대, 자유를 확대하면 권력이 이에 비례해 축소될까? 과연 우리는 정보기술혁명 시대의 권력이 어떤 모양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기계, 권력, 사회>는 부제가 간명하게 보여주듯 “인터넷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파고드는 책이다. 공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를 지향해온 지은이 박승일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토대로 쓴 이 책에서 미셸 푸코와 질 들뢰즈의 사유에 주로 기대어 기존과는 다른 오늘날 권력의 동학을 구체적으로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 규율사회에서 관리사회로의 이행, 자유 그 자체를 토대로 삼는 신자유주의 통치성, 기계에 대한 사유 등 기본적인 관점이나 활용하는 도구들이 아주 새롭거나 독특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지은이가 이들을 폭넓게 종합해 나름의 개념 틀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내려 했다는 점이 값지다.

지은이의 핵심 물음은, 얼핏 들으면 모순처럼 들리는 ‘자유롭게 통제하기’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큰 틀에서 지은이는 “환경관리권력”과 “정신관리권력”이라는, 각기 서로 다른 벡터를 지닌 두 권력에 대한 규정을 제시하고, 이 두 권력이 그리는 “이중의 나선”이 오늘날 “관리사회”라는 ‘사회적 짜임’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봤다. 가짜 사바나에 있는 동물들은 우리에 갇혀 있던 기존의 동물들에 견줘 자유롭게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인간의 ‘관리’ 안에서만 자유롭다. 동물들은 자신들의 환경이 자연이라고 생각하나, 그 자연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달성된 것이다. “큰 틀에서는 통제의 원리를 따르도록 하지만 역설적으로 내부에서는 자유의 원리가 구현되도록” 만들어진 체제, 이것이 곧 자유와 통제가 교차하는 “이중적인 관리 구조”다.

사진 Su San Lee, 출처 언스플래시
사진 Su San Lee, 출처 언스플래시

이중적 관리 구조는 두 가지의 권력 작용을 토대로 삼는다. 과거 포드주의에 입각했던 규율사회는 생산성의 한계 등에 부딪히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고, 전지구적 범위로 확장된 정보통신기술이 인간 자체를 직접적인 생산체계에 포섭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이는 인간의 신체뿐 아니라 정신, 더 나아가 일상생활 같은 사회적 활동까지 포섭해 잉여가치를 만들어내는 체제이기 때문에, 개별 인간들을 포섭하는 ‘정신의 기계화’와 인구와 사회 전체까지 포섭하는 ‘노동의 사회화’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환경관리권력과 정신관리권력은 각각 이에 해당하는 권력 작용인 셈이다.

환경관리권력은 주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주체를 둘러싼 매개 환경에 개입함으로써 최대의 통치 효과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처럼 이미 구축된 환경 속에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애초 어떤 환경에 의해 ‘구성된’ 주체는 늘 그 환경을 ‘구성하는’ 주체로 거듭날 가능성까지 내포했다. 그러나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주체 없이도 자동으로 작동하는” 경지에까지 이른 환경은 이제 사물과 세계에 개입해야 하는 수고로움뿐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역량으로부터까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와 달리 정신관리권력은 환경이 아니라 누군가의 정신에 작용해 이를 특정한 방향과 형태로 유도함으로써 통치 효과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구글이 제공하는 검색 결과, 페이스북이 제시하는 뉴스피드, 유튜브가 추천하는 동영상 목록 등의 이면에는 ‘아무나’로 하여금 자신의 정신적 능력과 활동을 자유롭게 쏟아내게 하고 이를 생산력으로 활용하는 권력이 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이 두 가지 권력이 서로 다른 벡터를 지니면서도 이중의 관리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중의 권력 작용으로 인해 물리적인 환경의 관리 프로세스는 더욱 촘촘해지고 배경화·일상화·자동화되고 있는 반면, 역설적으로 그 내부 구성원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더 자유로운 모습으로 자연화·전면화·활성화되고 있다.” 환경에 대한 개입은 처음에는 인위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엔 자연 그 자체와 분리 불가능하게 뒤섞이게 된다. 그리고 두 가지 권력이 뒤섞여 만들어진 결합 구조가 ‘관리사회’를 지배하는 하나의 합리성으로 통용될 것이다. 이런 합리성 자체를 문제 삼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이를 지탱하고 있는 원리와 운동에 대해 더욱더 철저한 분석과 이해가 불가피하다. 지은이가 제시했듯, “통제와 자유가 비동시적인 모순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한 지점에서 충돌 없이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사유는 이를 위한 출발점에 놓일 수 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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