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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강제동원 피해 해결 원칙은 사죄, 보상, 기억”

등록 2021-08-13 05:00수정 2021-08-14 02:30

강제동원 피해 관련 일본 전문가
한일청구권협정 문제점 비판하며
화해형, 독일형 등 구체적 방안 제시
“진정한 해결 위해 3가지는 꼭 필요”

강제징용자의 질문
일본 강제노역 피해자 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치다 마사토시 지음, 한승동 옮김 l 한겨레출판 l 1만7000원

2018년 10월30일 대법원은 여운택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재판 당시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여씨 등 원고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여씨 등은 1941~43년 일본제철 공장에 강제동원돼 노역을 했으나 임금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의 판결로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배상을 받을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일본제철은 배상금 지불을 거부했고, 현재 법원은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한 상태다.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규제에 나서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은 난제 중 하나다. <강제징용자의 질문>은 일본 내 강제동원 문제 전문가이자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불리는 변호사 우치다 마사토시가 강제동원 문제의 쟁점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청구권협정에서 강제동원과 관련한 큰 쟁점은 두 가지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나 불법이었나 하는 것과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 여부다. 대법원 판결은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이었고, 이에 따라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소멸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일본은 식민지배는 합법이었으며 청구권도 청구권협정 제2조(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에 따라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는 “청구권협정은 미국의 압력 아래 한국 쪽이 일본의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제대로 추궁하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이 응해 이루어진 것”이라며 “일본 쪽에서 보자면 ‘싼값’에 식민지배 청산 문제를 처리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식민지배 청산과 같은 역사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해자가 가해 사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죄해야 하지만, 청구권협정에서는 그것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이에 따라 1965년 한일기본조약·청구권협정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청구권협정에서 포기된 것은 국가의 ‘외교보호권’(외국에 있는 자국민의 이익을 본국이 외교 절차를 통해 보호할 권리)이며 피해자들 개인의 청구권은 포기되지 않았다는 논리도 함께 제시한다.

지은이는 청구권협정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강제동원 피해 해결 방안으로는 좀더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가해 기업이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보상금을 지불하는 ‘화해’ 방식이다. 이는 중국인 강제동원 피해 해결에 적용된 방식으로 지은이는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한국인뿐 아니라 중국인들도 연행해 강제노동을 시켰다. 약 4만명의 중국인들이 일본 각지 여러 기업에 배치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고, 그 결과 약 7000명이 사고, 고문, 영양실조 등으로 일본에서 사망했다. 일본 패전 뒤 한동안 잊히거나 은폐됐던 이 사건들은 중국인 피해자·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으로 표면화됐다.

대표적으로 ‘하나오카 화해’를 들 수 있다. 가시마 구미(가시마 건설의 전신)의 하나오카강 개수공사에 동원됐던 11명의 생존자·유족이 1995년 6월 가시마 건설에 대해 1인당 500만엔씩의 손해배상금 지불을 요구하며 도쿄 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인 피해자들이 일본 재판소에 제기한 첫 소송이었다. 재판소는 청구는 기각하면서도 양쪽에 화해를 권고했다. 결국 2000년 11월 화해가 성립돼, 가시마 건설은 강제연행·강제노동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유족들에게 사죄한 뒤 화해금으로 5억엔을 지출한다. 1998년 1월에는 니시마쓰 건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됐으나 역시 기각된다. 하지만 법원은 판결 말미에 덧붙인 ‘부언’을 통해 니시마쓰 건설에 피해자 구제 노력을 할 것을 권고했고, 2009년 10월 양쪽의 화해로 이어진다. 2016년 6월 이뤄진 ‘미쓰비시 머티리얼 화해’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지은이는 한국인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도 “니시마쓰 건설,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화해를 결단할 때 실마리로 삼은 ‘부언’의 정신-피해의 중대성을 생각하면 당사자들 간의 자발적인 해결이 이루어져야 한다-에 따라 화해를 통해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

지은이는 ‘독일형 해결’도 함께 언급한다. 2001년 독일에서는 국가가 약 50억 마르크를, 강제노동을 시킨 폭스바겐 등의 기업 수십개사가 약 50억 마르크를 내서 ‘기억·책임·미래 기금’을 설립한다. 그리고 이 기금으로 나치 시대 강제연행·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 약 150만명에게 보상을 한다. 한국 내 일각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본 정부·일본의 가해기업+한국정부·한국의 청구권협정 수혜 기업 4자에 의한 기금 설립안’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을 수 있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은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공식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사죄와 배상에 나서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여러 차례 강조하는 강제동원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아래 3대 원칙은 되새겨볼 만하다. “①가해 사실 및 그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한다. ②사죄의 증거로 경제적인 수당(배상·보상)을 준다 ③추도사업을 하고 동시에 미래의 교훈을 위해 역사교육을 실시한다.” 또한 지은이는 “노무강제동원 문제의 본질은 피해자 개인의 인권문제이고, 따라서 어떠한 국가 간 합의도 피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일본 교토의 ‘단바 망간 기념관’의 전시장. 300m 길이의 갱도 속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당시 작업 모습이 마네킹으로 재현돼 있다. 교토/연합뉴스
일본 교토의 ‘단바 망간 기념관’의 전시장. 300m 길이의 갱도 속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당시 작업 모습이 마네킹으로 재현돼 있다. 교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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