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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온한 말을 애정하다

등록 2021-08-13 04:59수정 2021-08-13 10:33

말끝이 당신이다
김진해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이 책은 불온하다.

단일민족어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 순수함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이들에겐 그렇다. ‘마르크스’든 ‘맑스’든 뭔 상관이냐, ‘도스토옙스키’가 ‘도스또예프스키’가 된다고 뭐가 달라지냐. ‘곁땀’은 맞고 ‘겨땀’은 안 된다고? 이런 의문을 넘어, 맞춤법을 없애고 ‘국가 사전’도 폐기하자는 주장에 이르면, 오자·탈자를 징그러운 벌레 보듯 박멸 대상으로 여기는 기자 입장에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말은 ‘성곽’이 아니라 강처럼 흘러가는 것이니 언어 순화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며, 오히려 각기 다른 표현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는 국어학자 김진해의 주장을 곰곰이 되새겨보자. 시민의 언어생활이 반드시 국가의 ‘판결’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야말로,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 정책’과 별 차이 없어 보인다.

언어를 대하는 고지식한 태도에 좀더 ‘여지’를 둔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올바르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진 자리엔 분노가 사라진다. 가령, ‘이건 틀렸어’가 아니라 ‘아, 이렇게도 쓰나 보군’ 하는 태도 변화. ‘다름’에 대한 이해도 자라난다. 아, 남자의 애인이 바로 ‘여친’은 아니구나! 우리의 언어가 얼마나 차별에 갇혀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에 이르면, ‘여자는 여자다’ ‘남자는 남자다’와 같은 말은 더이상 “하나마나한 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연해 보이는 표현에도 “사회적 통념의 때”가 잔뜩 끼어 있다. “여자 양궁은 올림픽의 효자 종목”이라는 표현의 모순처럼 말이다.

이처럼 말이란 사회적 맥락 속에 옴짝달싹 못하고 끼어 있는 듯하지만 모든 말은 한없이 개인적이다. ‘오른쪽’의 사전적 정의는 ‘북쪽을 향했을 때의 동쪽과 같은 뜻’이지만, 오른쪽 귀의 기능을 잃은 이에겐 ‘타인과 함께 있기 위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란 의미가 더해진다. 다른 사람의 오른쪽에 있어야 왼쪽 귀로 들을 수 있으니까. 말엔 “말하는 사람의 심장과 시간”이 박혀 있다.

말은 또한 변화무쌍하다. 말에 자제를 요청할 순 있어도 반대하거나 금지할 순 없는 이유다. ‘허버허버’ ‘웅앵웅’ ‘5조5억’ 같은 말의 기원이 ‘젠더 혐오’에 오염됐다고 하더라도, “기분 나쁘니 쓰지 말라”는 건 안일한 대응이다. “반대말을 만들거나 새 의미를 덧붙여서 그 표현이 갖는 효력을 회수하는 방식”이 좀 더 문화적으로 ‘기특한’ 방법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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