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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반공주의’ 번역 기대한 구독권 선물, 되레 비판의식 키웠다

등록 2021-08-09 07:33수정 2021-08-09 15:11

【거대한 100년 김수영】 ⑫ Encounter
남대문 상인 등을 통해 구한
외국 잡지 번역해 생계 꾸려

엔카운터와 파르티잔 리뷰
좌파 지식인들의 잡지이자
반공 문화 사업의 산물
편견없이 서구 지식과 호흡
곱씹으며 새 주체성 만들어

어려운 형편에도
죽을 때까지 두 잡지 구독
봉투 위에 시의 초고 쓰기도
김수영이 집에 배달된 잡지 <엔카운터> 봉투 겉면에 쓴 동시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이 집에 배달된 잡지 <엔카운터> 봉투 겉면에 쓴 동시 ‘나는 아리조나 카보이야’ 초고.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에게 번역은 양가적 행위였다. 그에게 번역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생업이었다. 생활이 궁핍했던 1950년대 그는 미공보원, 피엑스(PX), ‘남대문통 외서 노점상인’ 등으로부터 외국 잡지를 구해 발췌 번역한 후 원고를 팔아먹을 궁리에 골몰했다. 밥벌이를 위한 번역을 “세상에서 가장 욕된 시간”이라 자조하며 “지긋지긋한 번역일”이라고 토로할 만큼, 생활인 김수영에게 번역일은 이를 악물고 매달려야 하는 생계의 중요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식인 김수영에게 번역은 세계성을 호흡하는 지적 실천이었다. “내 시의 비밀은 내 번역을 보면 안다”는 시인 자신의 말마따나, 그의 문학은 번역을 통한 타자와의 부단한 소통의 결과였다. 김수영은 외서 읽기와 번역을 통해 타자와 만나며 많은 결여를 지닌 자기(문화)를 아프게 자각했으며, 그 고통스러운 인식을 부둥켜안고 세계와 부딪히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그 고투에서 흘린 선혈이 그의 시와 산문 도처에 낭자하다.

1950년대 중반 무렵 김수영은 죽을 때까지 큰 영향을 받게 될 <엔카운터>(Encounter)와 <파르티잔 리뷰>(Partisan Review)를 만난다. 런던에서 발행되었던 <엔카운터>는 “비공산주의 좌파들의 집결처”로 명성을 떨치던 세계문화자유회의의 기관지였다. 전세계에 35개 지부를 둔 이 단체에는 스페인내전 당시의 인민전선파를 비롯하여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좌파 진보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간행되던 <파르티잔 리뷰> 역시 반스탈린주의적 입장을 표명한 잡지였다.

그러나 화려한 명성 속에 세계적 영향력을 자랑하던 <엔카운터>는 1967년 추문에 휘말려 폐간된다. 세계문화자유회의 창설을 주도한 마이크 조셀슨이 시아이에이(CIA) 요원이었고, <엔카운터>를 비롯한 20여종의 잡지, 각종 프로젝트가 시아이에이 자금으로 운용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곧장 <엔카운터>의 모든 것을 반공 선전물로 재단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다. 실제로 중요 편집위원들조차 잡지 지원의 배후에 이런 은밀한 사업이 있었는지 몰랐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문학> 1966년 가을호에 발표된 시 ‘엔카운터지’ 앞부분. 맹문재 제공
<한국문학> 1966년 가을호에 발표된 시 ‘엔카운터지’ 앞부분. 맹문재 제공
1950∼60년대는 문화적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미국과 소련은 일종의 문화 전쟁 중이었다. 시아이에이는 소련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항하는 방법으로 마티스, 세잔, 쇠라, 샤갈, 칸딘스키 등 초기 모더니즘 대가의 전시회라든가 잭슨 폴록의 추상 예술을 지원했다. 엘리엇의 <황무지>,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체호프와 톨스토이 작품 등 1천종이 넘는 서구 고전의 번역에도 시아이에이가 관여했다. 이 모두를 냉전의 산물이라 제쳐두면 무엇이 남겠는가?

<엔카운터>를 둘러싼 냉전 문화 사업의 영향은 시인 김수영에게까지 미쳤다. 유럽에 본부를 두고 있던 세계문화자유회의는 아시아 각국의 공공기관 및 언론사에도 <엔카운터> 1년 구독권을 증정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지식인들에게 이 잡지와 문화자유회의에 대한 인지도를 끌어올리려는 의도였다. 문화자유회의에 그 대상자를 추천하고 잡지 구독 경비를 지원한 것은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미국의 민간 기구 아시아재단(The Asia Foundation)이었다.

아시아 18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던 아시아재단은 1950~60년대 한국의 문화·예술·학술 등 정신적인 영역에 많은 지원과 도움을 주었던 기구이다. 현재 미국 스탠퍼드대학 후버 인스티튜션의 기록 더미 속에 김수영에게 <엔카운터>와 <파르티잔 리뷰>를 보내게 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한 서류철이 하나 남아 있다. 그 경위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러하다.

김수영이 한국시협상 부상으로 받아 봤던 잡지 <엔카운터>와 <파르티잔 리뷰>의 구독 연장을 위해 아시아재단 서울 사무소에 보낸 편지. 김수영문학관 제공
김수영이 한국시협상 부상으로 받아 봤던 잡지 <엔카운터>와 <파르티잔 리뷰>의 구독 연장을 위해 아시아재단 서울 사무소에 보낸 편지. 김수영문학관 제공
김수영은 1957년 12월28일 제1회 시인협회작품상을 수상했다.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대표는 시인에게 두 잡지의 1958년도 1년치 정기구독권을 부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편지를 보내며, “훌륭한 두개의 미국 잡지”가 시인의 “사상과 영감의 자양”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적고 있다. 서울지부에서 재단본부로 그리고 다시 <엔카운터>(런던), <파르티잔 리뷰>(뉴욕)의 구독 담당 부서로 서류가 오간 후 두 잡지는 시인이 살던 서울 마포의 구수동 집으로 우송되었다.

이들이 김수영에게 잡지를 보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유럽 주요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있는 <엔카운터>를 ‘훌륭한 미국 잡지’로 규정하는 한국 지부 대표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잡지를 제공한 이들은 원조의 후의와 더불어 냉전적 의도를 품고 있었다. 즉, 잡지 제공은 미국식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서적을 뿌리고 반공주의 도서 번역을 원조했던 냉전 도서 프로그램(Book program)의 일환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엔카운터> 또한 그런 도서 중 하나로 여겼고, 그것이 시인에게 도착하여 반공주의의 효과를 발휘하길 기대했다.

서울 마포구 구수동 김수영 집으로 배달된 잡지 <엔카운터> 봉투 겉면. 뒷면에는 시 ‘적 1’ 초고가 적혀 있다. 김현경 제공
서울 마포구 구수동 김수영 집으로 배달된 잡지 <엔카운터> 봉투 겉면. 뒷면에는 시 ‘적 1’ 초고가 적혀 있다. 김현경 제공
서울 마포구 구수동 김수영 집으로 배달된 잡지 <더 런던 매거진> 봉투. 뒷면에는 시 ‘절망’ 초고가 적혀 있다. 김현경 제공
서울 마포구 구수동 김수영 집으로 배달된 잡지 <더 런던 매거진> 봉투. 뒷면에는 시 ‘절망’ 초고가 적혀 있다. 김현경 제공
하지만 냉전의 에이전시들이 의도한 대로 김수영에 대한 잡지 구독 지원이 그 효과를 발휘했는가는 의문이다. 그 의도들은 김수영에게 의식적으로 오인되거나 혹은 창조적으로 전유되면서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김수영은 세계문화자유회의의 지식인 그룹의 전언을 경청했지만, 그들의 주장을 보편으로 받드는 대신 자신의 현실 속에서 곱씹으며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하는 자원으로 활용했다.

4·19 한해 뒤에 쓴 산문 ‘밀물’에서 김수영은 “외국인들의 아무리 훌륭한 논문을 읽어도 ‘뭐 그저 그렇군!’ 하는 정도”이며, “‘엔카운터’지가 도착한 지가 벌써 일주일도 넘었을 터인데 이놈의 잡지가 아직도 봉투 속에 담긴 채로 책상 위에서 뒹굴고 있다”고 적고 있다. 4·19의 고양된 열기 속에서 시인은 “너희들 미국인(美國人)과 소련인(蘇聯人)은 하루바삐 나가다오”(‘가다오 나가다오’)라며 한반도를 옥죄고 있던 냉전 체제 그 자체를 거부하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5·16으로 혁명은 좌절되었고 냉전은 더욱 심화되어갔다. 쿠데타가 할퀴고 간 좌절한 혁명을 성찰하고 세계의 변방을 사는 비루함을 이겨내며 시인의 사상은 더욱 원숙해졌다.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거대한 뿌리’)에 대한 깨달음이나 “엔카운터/ 속의 이오네스코까지도 희생할 수 있었어. 그게/ 무어란 말야. 나는 그 이전에 있었어. 내 몸. 빛나는 몸”(‘엔카운터지(誌)’)이라는 구절에서 진정으로 세계를 호흡한 자만이 토해낼 수 있는 긍지가 엿보인다.

<현대문학> 1961년 1월호에 발표된 시 ‘가다오 나가다오’ 앞부분. 맹문재 제공
<현대문학> 1961년 1월호에 발표된 시 ‘가다오 나가다오’ 앞부분. 맹문재 제공
김수영은 “미국의 ‘국무성 문학’이 ‘서구 문학’의 대명사같이 되”어버린 냉전 시대의 반공 문학을 날카롭게 비판했고, 동시에 “외국 문학을 보지 않는 것을 명예처럼 생각”(‘히프레스 문학론’)하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의 협량함을 질타했다. 전통 부재의 한국 문학에 대한 뼈아픈 자각 위에서 이루어진 그 못난 전통에 대한 역설적 긍정은 문화적 폐쇄주의나 독단적 민족주의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과 서구라는 타자의 지식을 편견 없이 호흡할 줄 아는 이가 도달한 어떤 경지였다.

김수영은 죽을 때까지 두 잡지를 구독했다. 아시아재단이 제공했던 지원이 끝난 뒤에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직접 비용을 송금하면서 잡지 구독을 계속 이어갔다. 김수영문학관에는 비용을 낼 터이니 구독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한 시인의 영문 편지가 남아 있다. 김수영의 부인은 시인이 두 잡지가 우송된 봉투를 뒤집어 시의 초고를 썼다고 증언하고 있다. 실제로 ‘엔카운터지’(1966년 4월5일 탈고)나 ‘사랑의 변주곡’(1967년 2월15일 탈고) 등 말년의 작품 초고가 이 봉투에 쓰여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냉전의 의도를 품은 포장지 위에 겹쳐 쓴 ‘사랑의 변주곡’. 이 부조화한 이미지야말로 척박한 시대의 제약을 고통스럽게 헤쳐가며 사랑의 사상을 향해 나아간 김수영 문학의 상징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정종현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부교수

정종현 교수.
정종현 교수.

김수영이 아시아재단 서울 사무소에 보낸 편지 둘째 장. 김수영문학관 제공
김수영이 아시아재단 서울 사무소에 보낸 편지 둘째 장. 김수영문학관 제공
서울 마포구 구수동 김수영 집으로 배달된 잡지 <파르티잔 리뷰> 봉투 겉면. 뒷면에는 시 ‘피아노’ 초고가 적혀 있다. 김현경 제공
서울 마포구 구수동 김수영 집으로 배달된 잡지 <파르티잔 리뷰> 봉투 겉면. 뒷면에는 시 ‘피아노’ 초고가 적혀 있다. 김현경 제공
김수영이 구독해 보았던 잡지 <엔카운터>가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2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수영이 구독해 보았던 잡지 <엔카운터>가 서울 도봉구 김수영문학관 2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가다오 나가다오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적막이 오듯이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 같기도 한 것이니

이유는 없다―
가다오 너희들의 고장으로 소박하게 가다오
너희들 미국인과 소련인은 하루바삐 가다오
미국인과 소련인은 ‘나가다오’와 ‘가다오’의 차이가 있을 뿐
말갛게 개인 글 모르는 백성들의 마음에는
‘미국인’과 ‘소련인’도 똑같은 놈들
가다오 가다오
‘4월 혁명’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고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잿님이 할아버지가 상추씨, 아욱씨, 근대씨를 뿌린 다음에
호박씨, 배추씨, 무씨를 또 뿌리고
호박씨, 배추씨를 뿌린 다음에
시금치씨, 파씨를 또 뿌리는
석양에 비쳐 눈부신
일 년 열두 달 쉬는 법이 없는
걸찍한 강변밭 같기도 할 것이니

지금 참외와 수박을
지나치게 풍년이 들어
오이 호박의 손자며느리 값도 안 되게
헐값으로 넘겨 버려 울화가 치받쳐서
고요해진 명수 할버이의
잿물거리는 눈이
비둘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동안에
나쁜 말은 안 하니
가다오 가다오

지금 명수 할버이가 멍석 위에 넘어져 자고 있는 동안에
가다오 가다오
명수 할버이
잿님이 할아버지
경복이 할아버지
두붓집 할아버지는
너희들이 피지 섬을 침략했을 당시에는
그의 아버지들은 아직 젖도 떨어지기 전이었다니까
명수 할버이가 불쌍하지 않으냐
잿님이 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두붓집 할아버지가 불쌍하지 않으냐
가다오 가다오

선잠이 들어서
그가 모르는 동안에
조용히 가다오 나가다오
서 푼어치 값도 안 되는 미·소인은
초콜릿, 커피, 페티코트, 군복, 수류탄
따발총… 을 가지고
적막이 오듯이
적막이 오듯이
소리 없이 가다오 나가다오
다녀오는 사람처럼 아주 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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