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사막 도시들에 보석처럼 숨겨진 매혹적인 이야기들

등록 2021-08-06 04:59수정 2021-08-06 09:43

아랍이라는 거대한 퍼즐 조각
맞춰가는 다섯 나라 이야기
‘동문 테러리스트’ 현대사 비극도
천일야화처럼 풍성하게 이어져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
올드 사나에서 바그다드까지, 18년 5개국 6570일의 사막 일기
손원호 지음 l 부키 l 1만8000원

더위를 피해 가족, 동료들과 커피숍에서 담소를 나누는 당신께 드리는 퀴즈.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커피하우스 문화의 기원은 어디일까? 영국? 프랑스? 의외로 정답은 1611년 이스탄불에서 문을 열었던 ‘까흐베하네’다.

6세기 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에 영향을 미치던 악숨 왕국 시절, 에티오피아 커피가 아라비아 반도의 끝자락 예멘으로 건너갔다. 이내 이슬람의 신비주의 종파 ‘수피’의 수도자들이 커피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밤을 샌 기도와 고행으로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으니, 잠을 쫓는 커피는 알라의 곁으로 길을 내주는 ‘신의 물방울’로 여겨졌을 것이다. 아랍을 휩쓴 ‘까흐와’(커피를 일컫는 고대 아랍어) 열풍은 중세 유럽을 거쳐 21세기 한반도에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단 커피뿐만 아니다. 이슬람, 히잡, 사막, 테러, 석유…. 몇가지 어두운 외피를 한꺼풀만 걷어내면, 아랍에는 온갖 매혹적인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사막 도시들 곳곳에 오아시스처럼 숨겨진 이야기에 이끌려 18년 동안 아랍 세계를 경험한 지은이는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를 통해 자신이 겪은 아랍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지은이는 군복무를 마치고 무작정 지원한 이집트 정부 초청 어학연수 코스에 합격해 2003년 처음 아랍 세계에 발을 들였다. ‘진짜’ 아랍인들을 만나고 싶어 예멘에서 9개월간 생활했고, 취직 뒤에는 이라크 주재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에서 역사·이슬람문명학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두바이에 거주하는 지은이의 현지 이름은 ‘태양’을 뜻하는 아랍어, ‘샴스’라고 한다.

사막의 밤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낙타의 모습. 픽사베이
사막의 밤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낙타의 모습. 픽사베이

그가 풀어놓는 아랍 이야기들은 ‘아라비안 나이트’를 연상케 한다. 아랍권 5개국, 이집트·예멘·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아랍에미리트의 역사와 문화 등을 설명하는데, 무엇보다 서구권 중심의 좁은 교양을 넘어서는 이야기들이 흥미를 끈다. 이집트에 별도의 교황을 중심으로 영성을 이어가고 있는 고대 기독교, 콥트교도가 1천만명이 넘는다거나, 예상과 달리 아랍 곳곳에서 공공연히 음주를 즐긴다는 이야기 등이 그렇다.

그렇다고 지은이가 아랍에서 기원한 현대사의 비극들에 애써 눈감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 주재관 시절 폭탄 테러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경험이나, 십수년 전 예멘에서 지냈던 어학원 누리집의 ‘유명 동문’ 소식란에서 같은 시기 동문수학한 한 수강생이 미국 항공기를 폭파하려다 미수에 그친 테러리스트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과정 등에서, 아랍의 혼란스러운 현재가 생생하게 나타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이 과정에 아랍 사람들의 마음을 충실히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인에게 과도할 정도로 친절하지만 시간 약속과 행정 규칙은 멋대로 무시하는 모습, 자신의 주장을 장황하게 내세우지만 결과에 대해선 ‘신의 뜻대로’라고 물러서는 이율배반 등을, 한국인의 시각이 아니라 물담배와 커피를 함께 나누던 아랍인의 목소리로 설명한다. ‘아랍 사람’이라 퉁치기엔 22개 국가와 부족, 종파로 나뉜 목소리가 너무나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아랍이라는 거대한 퍼즐 조각들을 수고롭게 맞춰가는 지은이의 노력은 성공적이다. 그리하여 코로나 시대, 방구석에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책장을 덮은 뒤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토록 매혹적인 아랍이라니!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수호’ JK김동욱, 고발되자 “표현의 자유 억압” 1.

‘윤석열 수호’ JK김동욱, 고발되자 “표현의 자유 억압”

‘아메리칸 파이’는 윤석열의 미래를 예언했을까 2.

‘아메리칸 파이’는 윤석열의 미래를 예언했을까

미국의 위기가 선택한 트럼피즘 2.0…‘또 만날 세계’가 불안하다 3.

미국의 위기가 선택한 트럼피즘 2.0…‘또 만날 세계’가 불안하다

60년 저항의 비평가 “요즘 비평, 논문꼴 아니면 작가 뒤만 쫓아” [.txt] 4.

60년 저항의 비평가 “요즘 비평, 논문꼴 아니면 작가 뒤만 쫓아” [.txt]

로마와 페르시아, 두 제국의 700년 ‘경쟁적 공존 역사’ [.txt] 5.

로마와 페르시아, 두 제국의 700년 ‘경쟁적 공존 역사’ [.txt]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