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잠깐 독서
치아에 새겨진 불평등의 이력들
메리 오토 지음, 한동헌·이동정·이정옥 옮김 l 후마니타스 l 2만2000원 치과는 두렵다! 캄캄한 시야 밖에서 각종 기구들이 내는 전동 소리는 성인들의 머리털도 쭈뼛 서게 한다. 이렇게 겁나는 치료를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볼티모어에서 48㎞ 떨어진 외진 시골에 사는 데몬테는 몸 상태가 걸을 수 없을 정도까지 악화됐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뇌막염이었다. 감염의 시작점은 왼쪽 위 어금니였다. 치아가 썩어 생긴 고름집의 세균이 뇌까지 번졌다. 두 차례에 걸쳐 뇌수술을 받았지만, 12살 아이는 목숨을 잃었다. 미국인 수백만명이 의료보험 문턱을 넘지 못해 치과 진료를 못 받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데몬테의 사망 사건을 보도한 뒤 많은 사람들이 끔찍한 의료 시스템과 마주하게 됐다. <아~ 해보세요>의 저자는 이 비극을 계기로 무질서한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치과가 보건 의료제도에서 어떻게 분리되어 진화했는지를 탐구했다. 불완전한 의료 제도와 정책을 바꾸려는 시민들의 현실적 노력은 책 말미에 비중 있게 다뤄진다. 가난에 따른 치과 진료 포기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19년 통계를 보면, 가장 부유한 소득 5분위는 50명 중에 1명이, 가난한 소득 1분위는 7.5명 중 1명이 치과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심하게 병들고 썩어 방치된 치아는 피할 수 없는 질병이라고 인식되기보다, 경제적 또는 도덕적 실패라는 낙인으로 이어지곤 한다. 관리 소홀의 책임을 당사자에게 묻는 것이지만, 몇 백 년 동안 버틸 수 있는 견고한 치아를 파괴하는 것은 ‘가난’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김세미 기자 ab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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