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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피터슨 ‘뜬금 열풍’…입소문 셀럽과 진짜 지식인의 차이

등록 2021-07-24 08:44수정 2021-07-24 16:14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① 조던 피터슨 열풍

신작 ‘질서 너머’ 한국서 열풍
‘자세 가다듬어라’ 수준 메시지
2019년 지제크와의 논쟁에서 완패
그는 왜 조롱거리로 전락했을까
캐나다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유독 국내에서 인기가 높다. 2019년 슬라보이 지제크와의 논쟁에서 밑바닥을 드러낸 피터슨을 참지식인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 갈무리
캐나다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은 유독 국내에서 인기가 높다. 2019년 슬라보이 지제크와의 논쟁에서 밑바닥을 드러낸 피터슨을 참지식인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 갈무리

조던 피터슨 토론토대학 심리학 교수가 한국에서 다시 뜨고 있다. 약 2년 반의 침묵을 깨고 출간한 신작 <질서 너머>가 지난 3월 한국어로 번역된 뒤, 넉달 만에 11쇄를 넘겼다. 피터슨의 한국 공식 유튜브 채널과 팬 채널이 개설되는가 하면, 한 유튜버는 그의 강연을 자신의 관점에서 개괄 정리한 책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2016년 ‘he’, ‘she’와 같은 인칭대명사를 트랜스젠더들이 요구하는 대로 ‘ze, zim, zer’ 같은 성 중립적 표현으로 부르기를 강제하는 캐나다 인권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표하고 일약 스타가 된 피터슨은 여러 방송에 출연하며 수많은 젊은이를 매료했다.

인터넷 도처에서 떠도는 그의 방송 클립들은 그가 페미니스트들을 ‘참교육’하는 모습으로 점철돼 있다.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페미니즘이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하 PC)에 피로감을 갖는 사람에게는 사이다를 선사했다. PC한 사람들, 정체성 정치를 중시하는 좌파,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도 이따금 튀어나오는 독단적인 태도(자신의 ‘올바름’만 믿고 설득력 있는 자료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등)를 반성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나왔고 피터슨은 한때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인사가 되었다. 그의 중후한 외모와 매력적인 목소리도 큰 몫 했다고 본다.

뜬금없는 한국발 ‘피터슨’ 재열풍

하지만 피터슨을 주목할 이유는 여기서 그친다. 2018년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번역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그의 인기는 금방 시들었다. 영미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기간에 충성파 일부를 제외하고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에게조차 조롱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피터슨 재열풍은 그래서 뜬금없다.

피터슨이 설파하는 메시지는 ‘집을 청소하고 자세를 가다듬어라’로 요약된다. 힐링과 셀프-헬프 라이프코칭의 결합이다. 내가 겪는 혼돈은 스스로 대부분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다. 매우 보수적인 메시지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러한 자기경영 담론으로 사회의 혼돈을 설명하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그의 시각에서는 사회에 내재하는 모순이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설명할 수 없는 사회 혼돈의 원인을 그는 외부의 적에게서 찾는다. 특히 PC, 정체성 정치 열풍과 백래시(반동적 공격)로 혼란스러운 작금의 상황에 대한 그의 진단은 음모론에 가깝다. 그는 PC 의제와 정체성 정치, 페미니즘을 무기로 삼아 사회 분열을 부추기고, 서구 문명의 기반을 약화시키려 하는 외부의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 이들을 ‘포스트모던 네오마르크시스트’라고 부르기를 고집한다.

이에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가 반응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피터슨의 ‘아무 말 대잔치’를 좌시할 수 없었다. 포스트모던은 하나로 묶이는 독트린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상의 분파를 수식하는 말이 아닐뿐더러 피터슨이 ‘포스트모더니스트’로 호명하는 사상가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사람들이었다. 지제크는 피터슨의 사상사적 무지를 공격했고 그에 발끈한 피터슨은 트위터에서 지제크의 계정을 태그하여 공개 논쟁을 벌이자고 도발하는 글을 남겼다. 피터슨이 도발한 지제크의 트위터 계정은 그의 어록들을 랜덤하게 자동으로 올리는 ‘봇’ 계정이었다는 점이 밝혀져 망신을 당했다.

지제크와 ‘포스트모던 네오마르크시스트’ 논쟁서 완패

이러한 해프닝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지제크-피터슨 논쟁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기대를 걸었다. 결국 토론회가 실제로 기획되어 2019년 대중적으로 가장 흥행한 지식인 논쟁이 되었다. 결과물은 너무나 싱거웠다. “당신이 말하는 포스트모던 네오마르크시스트가 누구냐”는 지제크의 질문에 피터슨은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토론회는 논쟁이 아니라 지제크의 일방적인 강의로 흘러갔다. 피터슨이 사회를 논할 역량이 전혀 안 되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토론회 직후 영미권에서 한동안 유행한 밈(인터넷 문화에서 모방을 통해 유행하는 명제나 이미지)이 있다. 피터슨은 토론 중 그의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네티즌들은 이 모습을 갈무리한 뒤 노트북을 보는 피터슨 사진 밑에 구글 검색창 화면을 합성했다. 검색창에는 ‘헤겔이 누구인가요’(who is hegel)라고 쓰여 있다.

이렇게 또 한차례 망신을 당한 뒤 피터슨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자신을 엄습한 혼돈을 다스리느라 바빴다. 그는 항우울제 중독에 빠져 있었고 심각한 부작용과 금단증상을 앓고 코마 상태에 빠지기까지 했다. 한 인터뷰 방송에서 밝히기를, 그는 어릴 적부터 앓던 만성 우울증을 완화하기 위해 소고기만 먹는 극단적 식이요법을 취했다. 한달 정도 육식만 하던 어느 날 한잔의 사과주를 마셨는데 이 때문에 신체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려 25일 동안 한숨도 못 자고 공포에 떨며 산송장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의 표현으로, 사과주는 ‘압도적인 파멸의 느낌’을 몰고 왔다. 피터슨은 장기간의 식이요법 때문에 신체가 과민반응을 한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지만 한달 남짓한 식이요법에 사과주 한잔으로 심신의 파국이 덮쳤으리라고 믿기 힘들다. 혹자는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다량의 항우울제를 복용해왔는데 한동안 끊었다가 엄청난 금단증상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한다. 어느 쪽이 되었건 피터슨의 인터뷰는 굉장히 기이하다. 항상 ‘외부의 적’을 찾아 단죄하려 하는 관성을 자신의 심신 건강 진단에도 적용하며 ‘파멸의 사과주’라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그토록 진지하게 하는 모습을 피터슨 팬들조차도 더는 진지하게 봐줄 수 없었다. ‘조던 피터슨의 크립토나이트는 사과주다’라는 농담이 유행했다.

최근 피터슨은 건강 문제를 겨우 극복하고 재기했다. 그의 책을 읽고 방 청소 잘하고 하는 것은 격려할 일이지만 수년을 혼돈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조롱거리로 전락한 피터슨의 말을 유독 한국 청년들은 참지성인의 그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바이럴로 알려진 셀럽과 지식인을 혼동해선 안 된다.

김내훈 작가,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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