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곽재식 지음/아작(2021) 요새 ‘괴심파괴자’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곽재식 작가의 작품 세계는 광대하다. 생활 밀착형 에스에프(SF)를 읽으면 이것이 그의 장기인가 싶고, 역사 추리 소설을 읽으면 사료 탐구에서 우러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적격으로 보인다. 논픽션에서는 남들 다 보는 뉴스에서 기이한 점을 찾아내는 눈이 돋보인다. 그러기에 <ㅁㅇㅇㅅ: 미영과 양식의 은하 행성 서비스 센터>를 읽으면, 이것이 바로 이 작가의 장르구나 싶다. 일상형 우주 활극, 살인 미스터리, 성찰을 요구하는 에스에프 역사 판타지가 뒤섞여 모든 장르의 곽재식화를 이룬 단편집이기 때문이다. 돈이 되면 뭐든 의뢰를 받는 이미영 사장과 회사의 설립 목적을 운운하며 딴지를 거는 김양식 이사가 함께 일하는 은하 행성 서비스 센터를 배경으로 하는 이 단편들은 2012년 이후부터 작가가 지금까지 틈틈이 써온 작품들이다. <ㅁㅇㅇㅅ>에는 그간 쓴 단편 중 10편을 추려 묶었다. G518E 행성에 있는 미영과 양식의 사무소에서 의뢰받는 일의 종류는 다양하다. 지적 생물체 우주 소송에 쓰일 증거를 수집하는 일, 강아지 로봇을 잡아다 주거나 실제 살아 있는 강아지를 운반하는 일, 미술관에서 그림을 훔쳐 간 화가의 행적을 추적하는 일, 가상현실 수업에 쓸 교육 장비를 구해오는 일 등등, 사업의 목적에 맞지 않는 의뢰뿐이다. 문제는 원래 사업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소설집을 다 읽어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지만. 여러 시기에 걸쳐 쓰인 작품들이고, 원래 작풍에 따라 반전이 강력하지도 않으며, 각 단편에서 공유하는 설정이 일치하는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은하를 넘나들 듯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종합적 상상력과 은근한 유머, 인간 사고의 한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질문이 인상적이다. ‘인간적으로 따져보기’와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에서는 인간이 사냥하거나 내쫓아도 되는 동물의 기준에 대한 소송이 소재이다. 이 기준은 인간과 유사한 지적생물체라고 판단되면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생명체 보호법의 적용 여부를 따지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된다. 동물권의 관점에서 인류가 자기를 위해 해쳐도 되는 생물과 아닌 생물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등장인물의 입을 빌린 작가의 논리를 한참 들어보면, 암세포도 생명이었나 하는 논란의 질문까지 도달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인간의 활동을 데이터로 삼은 에이아이(AI) 알고리듬의 문제, 미래 예측과 시간 여행의 관계, 가상현실로서의 현 세계 등 생각할 거리가 가득 들어 있어, 여유를 가지고 한 편씩 야금야금 읽기에 좋은 단편들이 수록되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힘은 몇 년에 걸쳐 쓰인 각 단편이 모여서 작품집이 되었다는 동어반복적 단순함에 있다. 책의 말미에는 어떤 작법서보다도 강렬하고 영감을 주는 작가의 말이 실려 있다. 2012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소설가였을 때 절필 선언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2021년의 이야기. 미래의 내가 와서 너는 성공한 작가가 될 테니 계속 쓰라고 말해주면 자신 있게 이어가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도 불확실 속에 꾸준히 쓴다. 이것이 <ㅁㅇㅇㅅ>의 우주를 만들어낸 정신이다. 글을 쓰지만 아직 작가가 되지 못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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