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권 지음/이상북스·1만8000원 한국 제도권 정치에서 지금처럼 진보 정당이 무기력한 순간은 드물었다. 지난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 꼼수에 뒤통수를 맞은 정의당은 캐스팅 보터의 위상을 잃어버렸고, 독자적인 의제 설정 역량도 떨어졌다. 하지만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김병권 소장은 눈앞의 현실 정치 한계에 좌절하기보다는, 고개를 들어 인류 생존과 번영의 문제가 달린 불평등과 기후위기 문제를 좇는다. 폭발적 혁신이 내장된 디지털 경제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약속받지 못하는 ‘긱(gig) 노동자’의 절망은 깊어만 간다. 기후위기는 불평등과도 깊숙이 얽혀 있다. 가령, 지구의 미래를 위해선 ‘탈탄소’가 정답이지만, 화석연료 기반 산업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대량 실업 등으로 불평등이 더 심화할 수 있다. 불평등의 피해자들을 공론장으로 끌어내는 것이 정치 본연의 기능이지만, ‘촛불혁명’ 이후 급속히 기득권화된 민주당에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해 보인다. 새로운 진보의 에너지 구축엔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복지국가, 노동시장정책, 사회보장 등 20세기 삶의 방식을 전제로 한 진보적 의제는 21세기의 불안정한 노동, 전통적 가족의 해체 및 달라진 생애 주기 등에 더 이상 조응하지 않는다. 저자는 정교한 설계나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미래를 상상하면서 현실에서 그 단서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 진보라고 말한다. 잠재적인 가능성을 낙관하는 것, 즉 불확실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뚜벅뚜벅 나아가는 거친 근성 없이는 세상의 규칙을 다시 쓰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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