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의 약탈: 새로운 공유 시대를 위한 선언
가이 스탠딩 지음, 안효상 옮김/창비·3만원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 교수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 팬데믹은 전 지구적 비극이지만 전환의 잠재력이 있다”며 “우리 모두의 회복력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회복력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존 분배 체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라고 했다.
경제학자인 스탠딩 교수는 권위 있는 기본소득 이론가 중 한 명으로,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공동창립자이자 현 명예공동의장이다. 기본소득 외에도 지대 자본주의, 불안정 노동, 공유지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는 지금의 자본주의를 더 많은 소득과 부가 물리적·금융적·지적 재산의 소유자에게 집중되는 ‘지대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이런 지대 자본주의와 함께 공동체의 공적 부인 ‘공유지’의 축소가 불평등을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공유지 이용에 대한 부담금으로 공유지 기금을 조성해 공유지 배당, 즉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점점 증가하고 있는 ‘프레카리아트’가 새로운 사회 변혁의 주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precarious(불안정한)와 proletariat(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로 비정규직, 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자를 말한다.
저서로는 <프레카리아트> <불로소득 자본주의> <기본소득> 등이 있고, 최근 <공유지의 약탈>이 번역·출간되었다. 인터뷰는 지난달 말부터 이번달 초에 걸쳐 이메일을 통해 이뤄졌으며, <공유지의 약탈> 번역자인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가 번역을 맡았다. 다음은 가이 스탠딩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 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공유지의 약탈> 한국어판 서문에서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 대유행과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공유지와 기본소득에 대한 공감이 커졌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이 공유지나 기본소득에 관한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코로나 팬데믹은 전 지구적 비극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방식이든 긍정적인 방식이든 전환의 잠재력이 있다. 부정적인 방식이란 내가 지대 자본주의라고 부른 것이 강화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방식이란 사회 그리고 우리 모두의 회복력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회복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이런 팬데믹의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유지에 기대를 걸고, 공유부를 회복하고 공유해야 하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적 우정’이라고 부른 것을 강화해야 한다. 나는 프레카리아트에 의한,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새로운 진보정치가 출현할 것이라고 믿는다.”
―몇년 사이 전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주요 어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체적인 불평등과 과도한 금융화의 결과였다. 금융위기는 불평등을 뚜렷하게 드러냈으며, 전 지구적으로 프레카리아트의 확대를 가져왔다. 갑자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분배 체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불안정과 스트레스라는 팬데믹을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19는 그런 느낌을 더 강화했을 뿐이며,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된 이유다.”
―기본소득은 한국에서도 중요한 정책이슈가 되었다. <기본소득>이라는 저서에서 “한국은 제대로 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일을 이끌 수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홍익인간’의 에토스가 한국인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고 믿는다. 또한 한국은 기본소득을 실현가능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고유한 이점이 있다. 한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었지만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수립되어 발전한 복지국가의 유산은 없다. 이로 인해 새로운 소득 분배 체제로 변화하는 게 상대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며,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오늘날 유럽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최악의 반대자들의 일부는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는 구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 그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복지 국가를 회복하기를 원한다. 한국은 이런 문제가 없다.”
―기본소득이 복지국가를 오히려 약화시킬 것이라며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존 복지국가와 기본소득의 관계는 어떻게 되나.
“서구 복지국가는 지금과는 다른 시기에 만들어졌는데, 과거에는 진보적이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은 가치에 기반하고 있다. 그것은 심각하게 성차별적이며, ‘노동주의’(labourism)에 기울어져 있다. 물론 우리는 기본소득에 더해 제대로 된 장애급여나 특별한 필요를 위한 부가급여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복지국가의 모든 것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현재 복지수당을 지급할 때 따라다니는) 조건들, 자산심사, 행위심사를 축소하자는 것이다. 또 보수가 없는 돌봄과 공동활동 같은, 노동(labour)이 아닌 일(work)도 존중하자는 것이다.”(가이 스탠딩은 보수를 받기 위한 ‘노동’과 자발적으로 행하는 가치있는 활동인 ‘일’을 구분한다.)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으로 기존 조세가 아닌 공유지 기금을 제안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소득과 소비에 대한 과세는 보건의료, 교육, 치안 등을 포함한 정부의 서비스와 인프라에 사용돼야 한다. 기본소득은 새로운 분배 체제의 닻이 돼야 하며, 공유지 기금으로 지급돼야 한다. 우리는 불법적으로 얻은, 지대 추구자들의 수입을 포착하고 재순환해야 한다.”
―공유지 기금과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극복해야 할 두 가지 난관이 있다. 첫번째는 지대 자본주의에서 이득을 얻는, 금권정치가와 금융가라는 소수 집단의 반대이다. 우리가 분명한 대표자를 동원하고 찾아낼 수 있다면,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않다. 두번째는 보수주의자 혹은 격세유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구 사회민주주의자들이다. 좋은 사회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새로 출현한 계급의 가치와 열망을 중심에 놓는 이야기로 이어질 경우에만, 진보의 물결이 흐를 수 있다. 오늘날 이 계급은 구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프레카리아트다.”
―한국에서도 프레카리아트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공유지 기금과 기본소득이 프레카리아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나.
“기본소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분별 있는 모든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이를 알고 있고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보적인 전략이 필요하고, 기본소득은 그 전략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다. 기본소득은 해방의 잠재력이 있으며, 공동의 정의와 기본적 보장, 회복력의 기반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일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고 전망하나.
“지금 진행 중인 기술 혁명은 역사상 처음으로 더 많은 ‘일’과 더 적은 ‘노동’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많은 기존의 일자리(jobs)를 없애기를 바란다. 그런 일자리는 존엄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 우리는 더 창조적인 일, 돌봄, 공동활동을 위한 공간을 창조해야 한다. 기술발전이 가져오는 직접적인 위협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증대이며, 노동과 일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공유지 기금을 만들고 공유지 배당의 형태로 수입을 재순환시켜야 하는 한가지 이유이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공유지 기금 조성해 모든 시민에게 배당 지급해야
-‘공유지의 약탈’ 내용은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SOAS) 교수의 <공유지의 약탈>은 현대 사회에서 ‘공유지’의 개념을 정의하고 공유지 축소의 실상을 전한 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지은이의 공유지 개념은 매우 광범위하다. “공유지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모든 자연자원과 우리 조상들이 물려주었고 우리가 보존하고 개선해야 하는 모든 사회적·시민적·문화적 제도들을 말한다.” 공유지는 자연·사회·시민·문화·지식 공유지 등으로 나눠진다. 자연 공유지에는 토지, 숲, 물, 광물, 공기 등이, 사회 공유지에는 치안, 우편, 대중교통, 도로, 공공주택, 돌봄서비스, 보건의료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시민 공유지에는 사법에 대한 권리 등이, 문화 공유지에는 예술, 대중매체, 공공도서관, 공공건축, 미술관 등이, 지식 공유지에는 정보, 지식, 교육 등이 속한다.
지은이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와 2007~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긴축 체제 하에서 공유지가 어떻게 방치, 침해, 사영화, 식민화 등을 통해 격감했는지를, 그리고 이런 축소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저소득층의 고통을 증가시켰는지를 영국 사례를 중심으로 세세하게 보여준다. 국민건강서비스(NHS), 노인돌봄서비스, 철도 등을 사영화한 것, 공영주택을 대폭 축소한 것, 공공건물과 공간을 민간 개발업자에게 매각한 것 등은 공유지 약탈의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지은이는 각 분야별 공유지를 최대한 회복시키는 한편, 공유지의 상업적 이용 또는 개발에 대한 부담금을 원천으로 하여 ‘공유지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부유세, 토지가치세, 탄소부담금, 주파수 경매나 허가에서 나오는 수입, 물 사용부담금, 기업의 개인 데이터 이용에 부과하는 디지털 데이터 부담금, 지적재산권 소득에 대한 부담금 등은 모두 공유지 기금의 재원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유지 기금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모든 시민에게 동등하게 공유지 배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배당은 실제로는 기본소득의 형태를 띤다고 할 수 있다. 소득 등과 관계없이 무조건 정기적으로 지불되는 돈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은이는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홍익인간’ 개념을 언급하며 “공유지의 본질을 아름답게 포착하고 있다”고 말한다. 또 ‘향약’을 공유지 모델의 하나로 제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