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전쟁: 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교양인·3만4000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간이 벌이는 극한의 폭력과 갈등 뒤에는 종교가 있다”고 비판한다. 멀게는 중세의 십자군 전쟁과 종교재판, 가깝게는 9·11 같은 테러리즘 등엔, 본질적으로 호전적인 종교라는 배경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같은 이는 “오직 종교적 믿음만이 다른 때에는 멀쩡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완전한 광기를 일으킬 만한 강한 힘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백 번 양보해서, 만약 종교란 것 자체가 없어지면 무자비한 폭력이 함께 없어질까? 아니, 최소한 더 줄어들기라도 할까?
대표작 <축의 시대>(2005)로 유명한 영국 출신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77)은 2014년 펴낸 저작 <신의 전쟁>(원제 Fields of Blood)에서 이 같은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이란 신화를 반박한다. 근대 이전 세계에서 종교는 삶의 모든 면에 스며있기에, 인간이 저지른 폭력을 그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은 피상적이고 단순한 접근일 뿐이다. “우리의 세속적 의식에서 종교적 믿음의 공격적 이미지는 지울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현대의 폭력적인 죄를 ‘종교’의 등에 실어 정치적 광야로 내몰곤 한다.” 단지 ‘종교 책임론’을 벗겨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지은이는 인간 사회에서 왜 폭력이 끊이지 않았는지, 그 속에서 종교는 어떤 구실을 했는지 등 무거운 질문들을 정면으로 던지며 우리를 종교와 폭력에 대한 역사로 안내한다.
지은이는 1부에서 우리를 문명의 탄생, 곧 중동 지역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농업과 더불어 문명이, 문명과 더불어 전쟁이 나타난 현장으로 데려간다. 농업은 필요 이상을 생산케 하여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힘을 앞세워 소수가 다수의 생산을 강탈하는 국가의 구조적 폭력을 만들었고 더 나아가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전쟁을 낳았다. 이는 고대 중동뿐 아니라 인도, 중국 등 인간 문명의 모든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었으며,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문명 자체의 딜레마”였다. 그럼 이 과정에서 종교는 무엇을 했는가? 지은이는 신과 영성에 대한 인간의 생각이, 구조적인 폭력을 낳는 국가 체제를 뒷받침하는 데 쓰였으나 다른 한편에선 폭력을 줄이기 위한 길을 냈다고도 짚는다. “종교의 역사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은 거룩한 전쟁만큼 중요했다.”
예컨대 고대 인도에서 아리아인들이 추구한 영성은 애초 폭력을 수행하는 지배 집단의 전사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했으나, 점차 내적인 영성에 관심을 가지며 모든 존재와의 친족 관계를 되새기며 비폭력(아힘사)을 기르는 쪽으로도 발달해갔다. 원래 ‘요가’는 전쟁에 나가기 전 준비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 말은 점차 ‘나’를 지우는 수행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고 한다. <축의 시대>에서도 밝힌 바 있듯, 인간은 폭력이 가득한 시대에 전세계 각지에서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깨달음을 발견해냈다. 다만 자신의 군대 때문에 반역의 도시가 겪는 고통에 경악하며 공감과 관용의 윤리를 강조했으나 결국 군대를 해체할 수 없었던 인도 황제 아소카처럼, 종교는 “전쟁의 줄다리기 속으로 딸려 들어갔을 뿐” ‘문명의 딜레마’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내진 못했다.
영국 출신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신의 전쟁>에서 ‘종교가 폭력을 낳는다’는 통념을 해체하는 한편 평화로운 목적과 폭력적 수단 사이의 모순을 만들어내는 ‘문명의 딜레마’를 고민한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은이의 독보적인 통찰은 근대 세계를 다루는 3부에서 특히 그 빛을 발한다. 전근대 농경 사회에서 제국은 정복한 지역에서 세금을 걷어들이는 데 집중했을 뿐 신민의 사회적 관습이나 종교적 믿음에는 개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상업 경제를 고안한 유럽인들은 농업 잉여에 토대를 두지 않은 아주 다른 종류의 국가를 창조했다. 시장의 힘 덕분에 국가는 전적으로 농업적인 경제가 강요하던 여러 제약에서 점차 벗어났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새로 창조한 국가는 과거 농경 국가보다 구조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덜 폭력적으로 변했을까? 역사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대의 세속주의는 정치와 분리된 새로운 ‘종교’를 가져왔는데, 이는 되레 종교의 외피를 뒤집어쓴 정치적 폭력을 더 강화시켰을 뿐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예컨대 종교가 이유가 됐다고 알려진 16~17세기 종교전쟁에서 정작 중요했던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사적 영역으로 밀어 내린 새로운 주권 국가의 성립”이었다.
무엇보다 지은이는 근대가 종교를 ‘민족 국가’로 대체했지만, 과거 종교가 그 본질로 지녔던 ‘타인에 대한 관심’은 계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했다고 주장하지만, 근대의 세속적 민족주의는 민족 자체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유사 종교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게다가 “식민지의 토착 민족을 희생하고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주의적인 서양에 특권을 부여하는 폭력적 억압의 체제”는 식민지에까지 가닿아 민족과 종교가 결합된 형태로 발전했고, 더욱 더 해결하기 어려운 모순들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애초 미국에서 태동했던 ‘근본주의’는 20세기 이슬람 지역에서 더욱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이슬람이 체질적으로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보다 폭력적인 성향이 강해서가 아니라 무슬림이 훨씬 더 가혹하게 근대성을 받아들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은이는 9·11테러와 ‘이슬람 테러리즘’,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 침공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이라는 수사에 가려진, 근대가 낳은 폭력의 진정한 본질을 짚어낸다.
“고대의 종교적 신화는 사람들이 국가 폭력의 딜레마와 마주하는 것을 도왔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현재의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딜레마를 부인하거나 우리의 마음을 냉혹하게 굳히도록 장려하는 듯하다.” 따라서 지은이는 폭력에 제동을 거는 것을 본질로 삼는 종교가 되레 더욱 많은 일들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출발점은 내가 아닌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는 카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물론 ‘그렇다’가 되어야 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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