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외곽주의자’ 검사가 바라본 진실 너머의 풍경들
정명원 지음/한겨레출판·1만5000원
검사.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는가.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짙은 색깔 정장 차림을 하고, 사각의 안경 속 빛나는 눈빛이 사건 관계인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짐작케 하는….
한 직업군에 대해 이렇게까지 강고한 이미지가 형성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관계 인사나 재벌 총수 등 거물들을 상대하는 검사들의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최초의 스테레오 타입이 형성된다. 여기에 때로 ‘권력의 시녀’가 되어 선별적 수사와 자의적 기소를 넘나드는 음험함과,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른 일사불란함과 조직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는 권력집단의 모습까지 덧붙어 이미지는 점점 구체화된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2천명이 넘는 검사들 가운데 10% 남짓 특수부·공안부 검사들의 특징적 형상을 극단화한 것에 가깝다.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에 재직 중인 정명원 검사는 나머지 90%인 형사부·공판부 검사들은 재판 도중 울기도 하고, 민원인과 기싸움을 벌이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회사원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16년 검사 생활 가운데 처음으로 펴낸 에세이집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에서다.
지은이는 스스로 늘 경계선 근처에 서 있다고 여기는 ‘외곽주의자’의 정체성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지방대를 나온, 집안적·사회적 아무런 배경이 없는, 체력이 다소 떨어지는, 여성인” 지은이는 그래서인지 검찰에서도 내내 중심이라 말하기 어려운 형사부와 공판부에서 일했고, 그 중에서도 다수 검사들이 꺼려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주로 맡고 있다. 검사가 됐다는 사실 자체가 최소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뜻 아니냔 의문에, 지은이는 “용의 세계에도 중심과 외곽은 있고, 내 포지션은 외곽”이라고 말한다.
외곽주의자의 정체성은 동료 집단과의 불편함에서 도드라진다. 사법연수원생 시절 봉사 활동을 위해 방문한 요양원 정원에서 뽑아내야 할 잡초와 지켜야 할 나물을 구분하지 못해 빈둥대던 동료들이 “잡초는 잎의 뒷면에 보송보송한 솜털이 있다!”는 한가지 기준을 찾아낸 뒤 모든 털 달린 풀들을 일사불란하게 제거하는 모습을 보며 공포심을 느끼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지은이는 “기본적으로 성실함과 단호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돌아보았던 생각이 난다”고 회고하는데, 경계에 선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서늘한 성찰의 한 대목이다. 국회의원이 된 김웅 전 검사의 <검사내전> 등 생활인으로서 검사를 기록한 앞선 책들보다 한발짝 더 나가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이런 외곽주의자 정체성으로 검찰청에서 ‘근무’하며 사건 기록에 실려오는 인간 군상들의 ‘웃프’거나 애잔한 사연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독자들에게 전한다. 기소·불기소, 유죄·무죄의 일도양단을 직업적으로 수행하는 검사이지만, 직접 만난 많은 이들은 유무죄로 단순화할 수 없는 ‘회색지대’에 서 있었으며, 그리하여 공소장에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그득하게 남아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과 깨알 같은 유머의 향연에 책장이 쉴 새 없이 넘어간다는 점은 대중 서적으로서 큰 미덕이다.
‘검찰 개혁’이라는 단어는 이미 너무나 많은 정치적 함의를 가지게 돼 화자에 따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헷갈리는 지경에 달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다 보면, 지은이와 같은 검사들이 검찰청을 드나드는 수많은 ‘장삼이사’ 민원인들을 친애하는 흐뭇한 장면이 떠오르게 된다. 검찰 개혁의 본질은 아마 그런 쪽에 있지 않을까.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