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밀로 지음, 이충호 옮김/다산사이언스·2만2000원 기린은 ‘자연 선택’과 ‘적자생존’을 주장하는 진화론의 대표 아이콘이다. 높은 곳에 있는 먹이를 먹기에 최적화된 긴 목이 살아남은 결과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실제 기린은 먹이가 부족한 건기에도 주로 덤불이나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는 잎을 뜯어먹으며, 칼로리 소비가 큰 기린일수록 더 많이 죽는다고 한다. 철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다니엘 밀로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는 <굿 이너프>에서 자연 선택과 적자생존 이론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진화론 자체를 부인하는 게 아니다. 찰스 다윈이나 허버트 스펜서 등이 자연이 마치 품종개량가처럼 최적화된 생물을 면밀히 골라내어 생존하게끔 해왔다고 보는 ‘가축화 유추’의 오류에 빠졌다고 보고, 이 같은 ‘우상’을 타파하겠다는 것이다. 그가 볼 때 “살아남은 생물은 대부분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저 도태될 만큼 충분히 나쁘지 않아서(굿 이너프) 살아남은” 것이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는 자연 선택과 적자생존 이론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 독특한 진화론의 무대에서조차 여기서 벗어나는 생물들의 존재가 훨씬 많다고 한다. 예컨대 여기엔 네 종의 흉내지빠귀가 사는데, 선택과 적응의 관점으론 이들의 종간 차이를 말하기 어렵다. 지은이는 탁월성을 드러내는 기능에 집착하는 인간의 편향이, 평범하고 의미 없으며 우연에 의존하는 자연의 ‘중성’을 거부해왔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자연에 대한 과장된 상상이 인간 사회에서 최적화 경쟁을 요구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만약 우리가 자연의 지혜를 존중한다면, 평범성에 대한 관용이 자연이 지닌 천재성의 한 측면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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