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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전후 일본의 암시장과 재일조선인의 생존

등록 2021-07-02 05:00수정 2021-07-02 09:04

재일조선인과 암시장: 전후 공간의 생존서사
박미아 지음/선인·3만9000원

1945년 해방 뒤 일본에 머무르다가 정주하게 된 재일조선인들은 극한 상황이었던 전후 공간에서 과연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을까? 박미아 청암대 재일코리안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최근 자신의 박사 논문을 바탕으로 펴낸 <재일조선인과 암시장>은 재일조선인이 전후 일본에서 형성됐던 ‘암시장’과 어떻게 불가분의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는지 등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세밀하게 들여다본 책이다.

지은이는 재일조선인과 암시장의 관계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암시장은 해방 이후 형성된 재일조선인 경제사의 출발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야키니쿠(불고기)와 파친코는 재일조선인 산업을 대표하는 양대 업종인데, 이 역시 전후 형성된 암시장에서 재일조선인들의 활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는 전쟁 때부터 암(闇·야미)거래가 성행했었는데, 패전 뒤엔 공권력이 무력해진 상황을 틈타 전국적으로 암시장이 생산과 소비, 유통을 지탱하는 공공연한 장소가 됐다. 각 도시마다 철도역 주변 공터에 암시장이 생겼고, 개인 운반업자격인 ‘가쓰기야’들이 철로를 타고 주요 산지를 찾아다니며 농산물 등을 떼어와 여기서 팔았다. 암시장은 5년가량 존재했던 일탈적인 시스템이었지만, 재일조선인에게는 이후 생활 전면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주요 인자로 작용했다.

1945년께 일본 도쿄 시부야에 형성된 암시장의 모습. 이듬해인 1946년 이곳에서 폭력단들이 싸움을 벌이는 등 암시장의 주도권을 둔 갈등도 잦았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1945년께 일본 도쿄 시부야에 형성된 암시장의 모습. 이듬해인 1946년 이곳에서 폭력단들이 싸움을 벌이는 등 암시장의 주도권을 둔 갈등도 잦았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해방 이전부터 일본 사회의 경제적 하층부에 머무르고 있었던 재일조선인들은 자본이나 기술, 인맥 등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이처럼 일본인이 형성한 암시장에서 생계 방편을 구해야만 했다. 암시장에서 내장구이나 밀조주를 팔던 이들이 야키니쿠 전문점을 개업하거나, 자본을 모아 파친코업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암시장에서 가쓰기야로 일하거나 밀조주를 빚어 팔거나 하다가 단속에 걸리면 생활보호 대상이 되는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대개의 경우였다. 도쿄 우에노, 오사카 우메다와 쓰루하시, 고베 산노미야 등에서는 재일조선인이 암시장에서 독자적인 상권을 형성하기도 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는 일본 암시장 조직과 관료조직과의 지난한 투쟁과 협상이 뒤따랐다.

특히 지은이는 일본인이 형성한 암시장에서 재일조선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이었는데도, 일본 주류 사회가 암시장에서의 재일조선인 역할을 과도하게 침소봉대하고 경제 교란의 주역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다고 강조한다. 전후 공간에서의 생존에서조차, 재일조선인은 구조적인 차별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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