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영남

‘의열단 첫 폭탄 성공’ 박재혁 의사 순국 100주기 기린다

등록 2021-05-11 20:13수정 2021-05-12 02:41

11일 부산 어린이공원 동상에서 추모제
12일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학술대회
박재혁 의사.
박재혁 의사.

부산의 독립운동가 박재혁(1895~1921) 의사 순국 100주기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는 11일 부산 부산진구의 어린이대공원 박 의사 동상 앞에서 순국 100주기 추모제를 거행했다. 이어 12일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6층 멀티미디어실에서는 ‘박재혁의사 서거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연다. ‘의열단 운동과 부산: 의열단 계통의 독립운동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의 의미와 효과’, ‘의열단에서 활약한 여성독립운동가’ 등 3개의 주제발표를 한다. 지난달 8일 개막한 박재혁의사 추모·선양 순회전시회도 28일까지 부산 초·중학교를 돌며 계속한다.

1895년 5월17일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난 박 의사는 공립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를 졸업한 뒤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했다. 1917년 6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무역업을 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고, 1920년 4월 의열단에 가입했다.

박 의사는 1920년 9월14일 중국인 고서적 상인 행세를 하며 부산경찰서를 찾아가 하시모토 슈헤이 서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고문한 죄를 꾸짖으며 폭탄을 던졌다. 하시모토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박 의사는 중상을 입었다. 일제 이래 의열단의 첫 폭탄 의거 성공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그는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박 의사는 “왜놈 손에 죽기 싫어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며 단식에 들어갔고, 같은 해 5월11일 오전 11시20분께 고문 후유증 등으로 감옥에서 순국했다. 박 의사 의거 뒤 국내에서 일제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이 잇따랐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모텔 입주 안산 6층 건물서 불…51명 구조, 2명 중상 1.

모텔 입주 안산 6층 건물서 불…51명 구조, 2명 중상

“기차 말고 버스를 타라고요?”…열차운행 시작한 서화성역 가보니 2.

“기차 말고 버스를 타라고요?”…열차운행 시작한 서화성역 가보니

[영상] 명태균, 구속 12시간 만에 또 조사…검찰 “돈 관계 혐의 부인해” 3.

[영상] 명태균, 구속 12시간 만에 또 조사…검찰 “돈 관계 혐의 부인해”

누가누가 잘 망했나?…올해도 카이스트 ‘실패 자랑’ 대회 4.

누가누가 잘 망했나?…올해도 카이스트 ‘실패 자랑’ 대회

[영상] “지하철역 식사, 세 가정 근무”…필리핀 가사관리사 호소 5.

[영상] “지하철역 식사, 세 가정 근무”…필리핀 가사관리사 호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