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독립운동가 박재혁(1895~1921) 의사 순국 100주기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는 11일 부산 부산진구의 어린이대공원 박 의사 동상 앞에서 순국 100주기 추모제를 거행했다. 이어 12일 남구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6층 멀티미디어실에서는 ‘박재혁의사 서거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연다. ‘의열단 운동과 부산: 의열단 계통의 독립운동가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의 의미와 효과’, ‘의열단에서 활약한 여성독립운동가’ 등 3개의 주제발표를 한다. 지난달 8일 개막한 박재혁의사 추모·선양 순회전시회도 28일까지 부산 초·중학교를 돌며 계속한다.
1895년 5월17일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난 박 의사는 공립 부산상업학교(현 개성고)를 졸업한 뒤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했다. 1917년 6월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무역업을 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했고, 1920년 4월 의열단에 가입했다.
박 의사는 1920년 9월14일 중국인 고서적 상인 행세를 하며 부산경찰서를 찾아가 하시모토 슈헤이 서장과 면담한 자리에서 독립운동가들을 붙잡아 고문한 죄를 꾸짖으며 폭탄을 던졌다. 하시모토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박 의사는 중상을 입었다. 일제 이래 의열단의 첫 폭탄 의거 성공 순간이었다.
현장에서 붙잡혀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그는 1921년 3월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박 의사는 “왜놈 손에 죽기 싫어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며 단식에 들어갔고, 같은 해 5월11일 오전 11시20분께 고문 후유증 등으로 감옥에서 순국했다. 박 의사 의거 뒤 국내에서 일제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이 잇따랐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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