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광복절 의열기념관 앞에서 열린 밀양시 만세 기념운동 모습. 밀양시 제공
일제강점기 무장독립투쟁으로 이름을 떨쳤던 약산 김원봉 의열단장 고향인 경남 밀양에 의열체험관이 세워진다.
밀양시는 14일 “(2018년 3월7일 김원봉 단장 생가터에 개관한) 의열기념관이 있는 해천 항일독립운동 테마거리에 내년 말 의열체험관을 열기로 했다. 11월까지 의열체험관 설계를 마치고, 올 연말 착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열체험관은 78억9000만원이 투입돼 연면적 1200㎡ 3층 건물로 지어진다. 항일독립운동의 시대적 정립과 재평가를 통해 항일·애국 역사의 교육 자원으로 활용된다. 의열기념관과 의열체험관 건립은 의열기념공원 조성 1단계 사업의 일부이고, 2022년 시작되는 2단계 사업에선 윤세주 생가 복원과 공원 조성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충의에 앞장선다’는 뜻을 지닌 의열단은 약산 김원봉 선생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1898년 경남 밀양군 노하동(현 밀양시 내이동)에서 태어난 김 단장은 1919년 만주 지린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했고, 그해 11월10일 의열단을 창립해 단장이 됐다. 그는 1926년까지 23차례에 걸쳐 의열단의 대일 거사를 기획하고 지휘했다. 1935년 7월5일 9개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한 민족혁명당이 창립되자, 당 서기부장을 거쳐 총서기가 됐다. 1938년 10월 조선의용대 총대장, 1941년 한국광복군 부사령 겸 제1지대장, 1944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부장 등을 지냈다.
김원봉은 1945년 12월2일 부인 박차정 선생의 유골을 안고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통일독립국가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미군정의 탄압이 심해지자 1948년 북으로 넘어갔고, 이후 행적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남에서 잊혔던 그는 2015년 영화 <암살>을 통해 다시 부각됐다.
같은 밀양 출신인 석정 윤세주 선생은 이웃이었던 김원봉과 죽마고우로 자라 평생 동지가 되었다. 그는 1919년 밀양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고 중국으로 망명했고, 김원봉과 함께 의열단 창립을 주도했다. 1942년 5월 전투 도중 일본군에 피격돼, 같은 해 6월3일 순국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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