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컨테이너 야적장.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이곳에 49~73층 레지던스 6개동 2700가구와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선다. 부산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개·폐막식이 열리는 영화의전당과 벡스코, 백화점 등이 몰려 있는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북서쪽에는 5만4480㎡ 규모 널따란 빈 땅이 있다. 1970년대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2000년대부터 택배 집하장으로 쓰고 있는 이 땅은 동해남부선 재송역을 코앞에 둔데다, 센텀시티와 고급 아파트 단지들을 주변에 두고 있다. 건설사들이 군침을 흘리다 2017년 부산지역 건설업체인 삼미디앤씨(DNC)가 사들여, 이듬해 6월 부산시에 개발계획을 제출했다.
부산시와 삼미디앤씨,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상조정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8차례 협상을 벌여 최종 개발안을 마련했다. 부산시는 상업지역으로 용도변경을 해줘 49~73층(225m) 6개동 2700가구의 레지던스와 상업·업무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하되, 삼미디앤씨는 용도변경으로 오른 토지가격의 52%(1100억원 예상)를 시에 공공기여금으로 기부하는 내용이었다. 용적률 400%에 숙박시설은 지을 수 없는 준공업지역을 용적률 1000%에 숙박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해주되 부산시가 개발이익 일부를 되돌려받기로 한 셈이다. 이런 식의 ‘거래’는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이라는 행정절차가 있기에 가능했다. 2012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지자체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은 개발이익 환수를 위한 방편이지만, 특혜 논란도 여전하다.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확정된 서울 강남구 삼성동 현대자동차 터 조감도. 서울시 제공
■ 개발이익 일부 돌려받는 합법적인 특혜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은 자치단체와 민간사업자, 외부전문가가 협상을 벌여 토지의 용도변경과 개발계획을 결정하는 제도다. 시설 이전 등으로 대도시에서 놀리고 있는 땅이어야 하고 처음엔 면적이 1만㎡ 이상이었으나 5천㎡ 이상으로 낮아졌다.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민간사업자는 땅의 용도를 개발 목적에 맞게 변경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 자치단체는 이윤 일부를 회수해 공공시설을 짓거나 지역개발사업에 투자할 수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도심의 방치된 땅을 주변 환경에 맞게 정비하고 균형발전을 꾀하며 개발이익을 되돌려받아 특혜 소지를 해소하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제도는 2012년 서울시가 처음으로 도입했다. 서울시는 강동구 고덕동 서울승합차고지(1만8953㎡), 마포구 동교동 홍대입구역 복합역사(2만844㎡), 용산구 용산관광버스터미널(1만8953㎡), 강남구 삼성동 옛 한전 부지(7만9341㎡) 등 4곳 민간사업자와 1년2개월~2년씩 협상을 벌여, 토지의 용도를 개발 목적에 맞게 변경해주되 용도변경 토지가격의 34~43%를 공공건물 건립 형식으로 기부받기로 했다.
부산시도 2016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해, 10곳을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 후보지로 선정했다. 삼미디앤씨에 이어 부산 건설회사인 ㈜동일스위트가 부산 기장군 일광면 일광해수욕장 맞은편의 옛 한국유리공업의 공장 터(공업용지) 14만여㎡를 2017년 11월 사들여 준주거지역 또는 상업지역으로 용도를 변경해 8~37층 아파트 15개동과 49층 레지던스 2개동 등을 짓는 방안을 부산시와 논의하고 있다. 아파트 면적을 애초 전체 터의 80%에서 47%로 줄였지만 사실상의 아파트인 레지던스가 해양관광·문화·체육시설 구역에 들어설 계획이어서 실제 주거지 비율은 50%를 넘는다.
기초자치단체도 벤치마킹에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경기도 고양시를 시작으로 7월엔 성남시가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도 2017년 3월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과 유사한 도시계획변경 사전협상을 도입했다. 첫 사례는 도심 마지막 노른자위로 알려진 호남대 쌍촌캠퍼스 6만4천여㎡다. 쌍촌캠퍼스가 광산캠퍼스로 통합 이전하면서 2015년 3월부터 4만4천㎡가 비는데, 광주시와 호남대 학교법인은 사전협상을 벌여 지난해 7월 광주시가 이 터에 아파트를 짓도록 도시계획변경을 해주되 학교법인은 시에 242억원을 기부하기로 합의했다.
부산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 1호인 센텀시티 북서쪽 컨테이너 야적장(빨간색 마름모)
■ 막개발 논란에다 자치단체들의 기여금 갈등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개발 상승효과를 기대한다. 도심의 방치된 땅에 대규모 아파트나 상업시설이 들어서면 주변 집값과 땅값이 덩달아 오르리라 기대한다.
반대하는 쪽도 있다. 부산 센텀시티 컨테이너 야적장 근처 센텀이편한세상아파트 주민들은 “분양과 매매가 가능하고 취사시설까지 갖춰서 사실상 아파트인 레지던스가 대규모로 들어서면 빌딩풍이 생겨나고 조망권·일조권 침해가 불가피하며 차량 흐름 방해가 더 심각해진다”고 호소한다.
도심 스카이라인 훼손도 문제다. 센텀시티 컨테이너 야적장은 수영강 변에 있는데 최고 높이 225m까지 지을 수 있다. 센텀시티 안 10여개 아파트·오피스텔 가운데 가장 높다. 부산시 관계자는 “센텀시티 안은 고도제한이 있지만 컨테이너 야적장 주변은 고도제한이 없다”고 말했다.
공공기여금을 받는 대상을 두고서는 광역단체와 기초단체가 충돌한다. 기초단체는 사전협상 당사자 자격으로 참여해서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하려 하고 있고, 광역단체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손을 내젓는다. 부산 해운대구가 부산시에 “900억원을 들여 새 청사를 지으려고 하는데 삼미디앤씨에서 받는 1100억원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자, 부산시는 ‘부산시 공공시설 운영기금 조례'에 따라 기금운용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충돌은 서울에서도 있었다. 서울 강남구는 2015년 서울시가 현대자동차그룹과 옛 한전 터에 현대자동차 새 사옥을 짓는 사전협상을 시작하자 “협상조정협의회 공식 참가와 함께 공공기여금을 영동대로 주변 개발에 우선 사용한다는 보장을 하지 않으면 사전협상 절차를 모두 거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컨테이너 야적장(빨간 선 안).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이곳에 49~73층 레지던스 6개동 2700가구와 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선다. 부산시 제공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을 가장 먼저 도입했던 서울시는, 공공기여금을 강남북 균형개발 재원으로 사용할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행 국토계획법 시행령은 이를 개발구역 내 공공·기반시설에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서울시 구상이 현실화하면 균형발전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강남구 등 이른바 ‘부자 구’들과 갈등이 문제지만,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던 국토교통부가 최근 찬성 쪽으로 돌아서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공공기여금의 산정 기준도 논란이다. 용도변경으로 오른 땅값만 기준으로 책정할 것이 아니라 아파트·레지던스·상가 등 건축물의 분양을 통해 올리는 수익의 일부도 회수해야 한다고 시민단체는 주장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행 법률에는 토지분만 기준으로 공공기여금을 산정하도록 하고 있다. 아파트·상가 분양 이득분 등의 사업소득까지 일부 회수하면 민간사업자가 투자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사전협상 지구단위계획은 용도변경을 쉽게 해줌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민간사업자가 가져가게 하는 합법적 특혜 제도다. 지역경제 활성화나 고용 창출 효과가 크지 않고 미래 세대의 자산을 훼손하는 막개발이나 다름없다. 서울시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용역을 진행하고 있으니 부산시는 서두르지 말고 용역 결과를 보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