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통합신공항 추진위가 지난 27일 경북 군위군 군위읍 군위전통시장에서 우보공항 사수를 위한 범국민 결의대회를 열어 단독후보지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지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군위군 제공
“일본이 우리나라를 거저 먹을 때 어떻게 했는 줄 압니까? 만주 쳐들어갈 테니 ‘길 좀 비키도(비켜줘)’ 해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선을 자기네들이 다 가져갔습니다. 지금 똑같습니다. ‘대구·경북 다 잘살라 카는데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지을) 땅 도(줘)’ 이캅니다. 절대 속으면 안 됩니다.”
지난 27일 오후 경북 군위군 군위읍 군위전통시장에서 무대에 오른 김영만 군위군수가 울분을 토했다. 무대 앞에 모인 1천여명의 주민들은 박수로 호응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이곳에서는 ‘우보공항 사수를 위한 범군민 결의대회’가 열렸다. 주민들은 단독후보지(군위군 우보면)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지어야 한다며 상여를 메고 공동후보지(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의 장례식을 치르는 행위극을 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운명 결정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국방부가 정한 31일까지 군위군수가 공동후보지에 유치 신청을 하면 공동후보지가 이전 부지로 결정되지만, 이대로라면 통합신공항 건설은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권영진 대구시장은 김 군수를 달래기 위해 지난 20일 ‘군위군의 대구시 편입 추진’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군위군은 요지부동이다. 대구와 인접한 경북 영천시와 성주군 등이 제3의 대안 후보지로 거론된다.
지역갈등도 심각하다. 통합신공항을 놓고 경쟁하는 군위군과 의성군은 철천지원수가 됐다. 군위군 안에서도 단독후보지가 아닌 공동후보지에 유치 신청을 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소음 피해 등의 문제로 통합신공항 유치에 반대하는 주민들도 있다. 소송전도 시작될 분위기다. 의성군은 지난 27일 군위군을 상대로 대구지방법원에 ‘유치신청 절차이행 청구소송’을 냈다. 군위군도 맞소송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대구에서는 아직도 민간공항을 멀리 옮기는 것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김동식 대구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대구 군공항만 이전하고 민간공항을 확장하는 게 최선이다. 도심 안에 있는 대구국제공항을 멀리 옮겨버리면 일부 시민들은 노선이 많은 부산 김해국제공항을 이용한다. 정부와 대구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군공항만 이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2014년 국방부에 이전건의서를 제출했다. 이후 별다른 진척이 없다가 2016년 6월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으로 영남지역 민심이 악화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 군공항과 민간공항을 함께 이전할 것을 갑자기 지시했다. 곧바로 국방부의 이전사업 타당성 평가 결과 ‘적정’ 결론이 내려졌고, 이듬해 2월과 2018년 3월에는 군위군 우보면과 의성군 비안면·군위군 소보면 두곳을 예비이전후보지와 이전후보지로 잇따라 선정했다.
통합신공항 의성군 유치위원회가 지난 27일 오전 국방부 앞에서 공동후보지에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을 건설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의성군 제공
‘주민투표 뒤 이전후보지 지방자치단체장의 유치 신청’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해 지난 1월 주민투표가 진행됐다. 투표 참여율과 찬성률을 절반씩 더해 점수를 매겼는데, △의성 비안 89.52점 △군위 우보 78.44점 △군위 소보 53.20점 순이었다. 군위는 단독후보지와 공동후보지에 모두 포함돼 주민들의 표가 분산된 결과였다. 이에 김영만 군위군수는 주민 다수가 반대하는 지역에 유치 신청을 할 수 없다며 신청을 거부하고 있다.
조광현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너무 급하게 사업을 추진했고, 지역사회 의견 수렴과 토론, 합의 과정이 부족했다. 또 두 지자체가 포함된 공동후보지를 넣어 이런 사태가 났다. 이번 통합신공항 건설이 무산되면 대구공항을 이전할지부터 원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사업의 공식 이름은 대구 군공항 이전사업이다. 대구 동구에 함께 있는 대구 군공항과 민간공항 7.1㎢를 경북에 15.3㎢ 규모로 넓혀 옮기는 사업이다. 대구시가 민자사업자를 구해 새 공항을 만들어 국방부에 주는 대신 국방부한테서 옛 공항 터를 받아 개발한다. 8조~9조원에 이르는 사업비는 대구시의 이 개발비로 충당한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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