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문화자산으로 여겨지는 ‘보수동 책방골목’(책방골목)에서 옛서적 등을 판매하고 있는 일부 상인들이 쭟겨날 위기에 처했다. 옛 건물을 사들인 업자가 고층 상업건물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9일 부산 중구와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의 말을 들어보면, 책방골목 들머리에 있는 건물이 최근 매각됐다. 이 건물에는 단골서점·동화나라·현우서점 등 책방 8곳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을 사들인 새 주인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지하 2층, 지상 18층 규모의 건물을 짓기 위해 건축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이런 사실을 접한 책방 상인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건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상인은 “책방골목에 있는 책방 34곳 가운데 이 건물에 세든 책방이 8곳이다. 새 건물의 임대료가 높게 책정되면 책방 8곳은 사실상 쫓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같은 건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또 다른 상인은 “건축업자가 석 달 안에 책방을 비워달라고 했다. 책방에 몇십만권이 있는데, 어디로 옮겨야 할지 난감하다. 평생 운영해 온 책방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허양군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장은 “책방골목은 부산의 명물 거리이자 관광자원이고, 문화자산이다. 책방 8곳이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보수동 책방골목 명맥이 끊어질 수 있다.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부산의 문화유산이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니 부산시와 중구, 정치권에서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중구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사유재산권 행사를 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하지만 새 건물 주인한테 ‘책방골목 보전을 위해 책방 상인들한테 다시 임대하고 임대료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겠다. 또 책방 주인들과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함께 대응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책방골목은 한국전쟁 때 생겨났다. 교과서와 참고서가 넘쳐났던 197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전국에서 고서, 절판된 책 등 문헌적 가치가 높은 책들도 이곳으로 몰렸다. 한때 100여개가 넘는 책방이 성업했고, 헌책방의 메카로 불리며 관광명소가 됐다. 2000년대부터 책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하락세에 접어들었고, 2010년대부터는 기업형 중고서점이 급성장하면서 쇠락하고 있다.
글·사진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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