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재혁 의사. <한겨레> 자료사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재혁(1895~1921) 의사의 항일 의거를 기리는 사업이 본격 진행된다.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는 22일 “박 의사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교과서 등에 박 의사 활동사항 수록·반영·건의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박재혁의사기념사업회가 창립했고, 지난 18일 국가보훈처가 비영리법인 설립을 허가했다. 또 부산 중구는 지난해 12월 박 의사 의거를 기념하는 표지판을 옛 부산경찰서(부산 중구 동광동) 터 옆 계단에 세웠다.
박 의사는 공립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1917년 6월 중국 상하이로 넘어간 뒤 1920년 4월 의열단에 가입했다. 같은해 9월14일 부산경찰서로 향한 박 의사는 중국인 고서적 상인 행세를 하며 당시 부산경찰서장인 하시모토 슈헤이의 면회를 신청했다. 하시모토는 중국 고서를 좋아했는데, 박 의사와 면담을 했고, 그 자리에서 박 의사는 독립투사들을 잡아 괴롭힌 하시모토의 죄를 꾸짖으며 폭탄을 던졌다. 박 의사는 중상을 입었고 하시모토는 사망했다.
박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뒤 1921년 3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 의사는 “내 뜻을 다 이뤘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 다만,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다”며 단식에 들어갔고, 같은해 5월11일 고문 후유증과 단식 등으로 감옥에서 순국했다.
박 의사의 의거는 항일운동에 불을 지폈다. 이후 1년 동안 국내에서 일제의 경찰서를 습격한 사건이 91건이나 일어났다. 하지만 지금까지 박 의사의 의거는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박 의사 혼자 의거를 한 데다 기록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도 1962년 박 의사한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 의사의 유족대표도 직계 유족이 없어서 박 의사 여동생의 손녀인 김경은씨가 맡고 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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