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부산 북항 1단계 구간 조감도. 1단계 기반시설은 2022년 완공 예정이다. 부산시 제공
국내 최초 근대 무역항인 부산 북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부산 영도·중·동·남구로 둘러싸인 이곳에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고층 건물 건축이 허가되면서 막개발이 우려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침략 거점으로 부산만에 조성된 북항은 한때 부산 해상무역의 중심이었지만 부산신항 개항 뒤 쇠락해 항만 재생이 추진돼왔다. 그러나 고층 건물에 더해 사실상 아파트인 레지던스 3천여가구 건설도 기정사실화되면서 부산 옛도심과 항구가 단절되고 옛도심 쪽 조망권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 북항 막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이 꾸려지는 등 반대 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 1.8㎞ 구간에 고층빌딩 스카이라인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 중·동구의 부산 북항 1단계 재개발 구간 안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앞 상업·업무지구 4만5855㎡에 3210실 규모, 200~280m 이하 높이 숙박시설 3개가 주 진입도로인 충장대로를 따라 나란히 들어선다.
부산 협성종합건업의 계열사인 협성르네상스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2017년 1월 1028실 규모에 높이 200m, 61층 생활형 숙박시설 건축허가를 받아, 현재 공정률이 50%를 넘었다. 내년 3월 완공 계획으로 최근 ‘협성마리나 지(G)7’이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2차 분양을 했다.
이어 한국투자증권 컨소시엄인 부산오션파크가 지난달 23일 1221실 규모에 높이 213m, 59층 생활형 숙박시설 건축허가를 받았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 직원 성추행을 인정하고 사퇴한 날이다. 동원개발 컨소시엄도 생활형 숙박시설 645실과 관광숙박시설 316실 등 961실 규모 72층짜리 숙박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 옛도심~항구 조망권 막는 아파트·레지던스 숲
건축허가를 받은 ‘생활형 숙박시설’은 흔히 레지던스로 불린다. 모텔·여관 등과 달리 취사시설을 둘 수 있고 분양을 받을 수 있어 집주인이 거주하거나 세를 줄 수 있다.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다. 부산시 관계자는 “레지던스는 건축법상 아파트가 아니며 공중위생관리법상 숙박시설이다. 완공되면 소유자가 숙박업 영업신고를 하고 영업을 해야 한다. 아파트로 사용하면 불법인데 사실상 단속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최형욱 부산 동구청장은 “상업·업무지구에 아파트를 불허한 것은 상권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도모하고 공공재인 항구가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레지던스가 허가되면서 북항이 부자들의 주거공간이자 부동산 기획상품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부산세관 옆 부산 북항 복합도심지구 2만7천㎡에는 아예 일반 아파트가 들어선다. 높이는 최고 200m다. 그나마 7만4천㎡ 규모였던 북항 복합도심지구가 지난해 12월 기본계획 변경을 거쳐 크게 줄면서 입주 아파트 규모도 3천여가구에서 1천여가구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소 10개 이상 고층 건축물이 충장대로 부산세관 옆 부산 북항 복합도심지구~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1800m 구간에 80~280m 높이의 오목한 브이자 모양으로 나란히 들어서면서, 조망권을 크게 해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조망권을 확보한다며 1800m 구간 가운데 560m를 바다와 옛도심이 서로 보이는 통경축(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으로 설정했다지만, 통경축의 높이도 80m 수준으로 옛도심 쪽 구봉산(해발 405m) 중턱에 있는 산복도로인 망양로까지 올라가야 북항을 볼 수 있다. 통경축을 뺀 1240m 구간은 최대 높이가 140~280m여서, 구봉산 정상에서도 북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에 들어선 고층 건물들이 수많은 옛도심 쪽 거주자들의 조망권을 완전히 빼앗는 셈이다.
■ 옛도심 재생을 고려하지 않은 재개발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초고층 건축물들의 북항 점령은 12년 전으로 올라간다. 2008년 10월 도시관리계획 변경 결정 고시를 통해 국토해양부는 부산시와 협의를 거쳐 부산 북항의 건축물 높이를 지금처럼 정했고, 복합도심·상업·업무지구를 북항 안에 배치했다. 상업·업무지구에는 단독·공동주택은 불허하되 호텔 등 숙박시설은 허용했다.
논란이 되는 레지던스는 2012년 1월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숙박시설에 편입되며 상업·업무지구에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법령 개정에 따른 변화였다지만, 해양수산부는 부산시와 협의를 거쳐 여러차례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통해 항구 모습을 조정하면서도 충장대로 앞 건축물 높이를 조정하지 않았다. 특히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 개정 이후라도 2018년 11월 이전에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통해 불허 건축물에 레지던스를 넣었어야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협성르네상스와 동원개발 컨소시엄, 부산오션파크는 각각 2012년 12월, 2018년 12월에 상업·업무지구 땅을 매입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레지던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바로잡을 시기를 놓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최고 101층 규모 레지던스와 85층 아파트가 함께 들어서는 ‘엘시티’ 공사가 시작됐고, 이후 엘시티의 실소유주 이영복씨가 정·관계 로비 혐의로 구속되면서 엘시티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레지던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항변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는 “부산 북항을 재개발이 아니라 재생 관점에서 보존하기 위해 민관이 2012~2013년 30여차례 라운드테이블을 열었고 나름 성과는 있었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바로잡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와 부산 북항 1단계 사업 시행자인 부산항만공사는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도 항변한다. 2008년 착공해 1~4부두와 중앙·여객부두 119만㎡와 해면부(바다) 34만㎡ 등 153만㎡에 공원·도로·공공시설 등 기반시설을 2022년까지 완공하는 북항 1단계 사업비는 2조388억원으로, 국비 381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비는 부산항만공사가 부담한다.
■ 부산시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어”
시민단체들은 레지던스와 아파트 허가를 취소하거나 스카이라인을 낮추라고 주장한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회의는 성명을 내어 “부산역 주변에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솟아나 도시 경관을 독점하려 한다. 부산 북항에 또다시 주거시설을 배치하는 것은 시민을 향한 배신 행위”라고 비판했다. 부산참여연대는 “부산시가 북항 재개발을 통해 어떻게 부산의 미래 100년을 먹여 살리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부산시는 “확정된 토지용도와 지구단위계획에 맞게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건축허가를 신청하면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김광회 부산시 도시균형재생국장은 “투자비 회수라는 불가피성이 있더라도 북항 1단계 사업은 항구 재개발에만 집중해서 옛도심과 북항이 단절되는 모양새가 됐다. 12년 전 당시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2단계 사업은 옛도심 재생과 연결해 1단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2022~2030년 사이 진행되는 2단계 사업은 자성대 부두, 부산역, 부산진역, 좌천·범일동 일대 220만㎡를 금융·비즈니스·연구개발 중심의 혁신 성장 거점으로 만드는 내용이다.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부산 북항 1단계 재개발구역 안 상업·업무지역에 들어서고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 ‘협성마리나 지(G)7’은 1021실 61층이다. 2020년 5월 공정률은 50%다. 내년 3월 완공 예정이다. 김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