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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이겨내요, 보통 사람들의 나눔이 ‘최고의 백신’

등록 2020-05-01 05:00

기초수급자도 노인, 장애인도…
돈봉투·마스크·간식·손편지 ‘선행’
“먹을 거 덜 먹고, 입을 거 덜 입고
밥 한숟가락이라도 나누고 싶어”

착한 임대주·소비자 운동도 큰 힘
“공동체 의식이 코로나 극복 원동력”
전북 군산의 한 홀몸노인이 저축한 돈 300만원과 아껴둔 마스크 40장을 익명으로 기부했다. 군산시 제공
전북 군산의 한 홀몸노인이 저축한 돈 300만원과 아껴둔 마스크 40장을 익명으로 기부했다. 군산시 제공
“코로나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 사람에게 받은 도움을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에요.”

지난 27일, 거듭된 요청에도 손사래를 치다가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박아무개(79)씨가 수줍게 말했다. 박씨는 지난달 13일 부산 사상구 모라3동 행정복지센터에 코로나19 극복에 사용해 달라며 2년여 동안 한푼 두푼 아껴 모은 돈 20만원을 기부했다. 사진촬영은 물론 이름 공개도 거부한 그는 모라3동에서 가족 없이 홀몸으로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다. 당시 박씨는 행정복지센터에 “금액이 적어 미안하고 부끄러우니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몇 차례 당부했다.

이웃들은 박씨를 작은 것도 함께 나누는 사람이라고 했다. 박씨 옆집에 사는 40대는 “몇 해 전 귀가 들리지 않기 전까지 그는 복지센터 등에 들러 노인들한테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봉사활동도 자주 했다”고 전했다. 모라동 행정복지센터 직원은 “형편이 넉넉지 않은 주민의 이런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먹을 거 좀 덜 먹고, 입을 거 좀 덜 입으면 된다. 밥 한 숟가락이라도 이웃과 나누며 살고 싶다. 작은 도움이 모이면 코로나19도 이겨낼 수 있다. 다른 분들도 함께 코로나19 극복에 참여하는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웃었다.

이날 한 50대 남성은 경남 거제시청 민원실에 찾아와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분들에게 최대한 빨리 도움을 주기 바란다’는 편지와 함께 1천만원이 든 가방을 두고 자리를 떠난 일도 있었다. 그는 편지에서 “마침 오늘 적금 만기가 되어, 그중 일부를 어려운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기부한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미뤄 마음의 짐이었는데, 이제 편히 잘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지난달 18일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주민이 서울 독산1동 주민센터 분소에 찾아와 가방을 주고 떠났다. 가방 안에는 “저는 지체장애 2급 수급자입니다. 국가와 국민이 저를 도와주셔서 보답하고자 합니다”라고 적힌 편지와 함께 마스크 9장, 현금 20만원이 들어 있었다. 16일에는 서울 은평구 불광2동 주민센터에 한 노인이 찾아와 “적은 돈일 수 있으나 끼니 줄여가며 2천원, 3천원씩 모은 돈이니 코로나 극복 위해 잘 써달라”고 말하며 74만3천원이 든 봉투와 손편지를 건넨 일도 있었다. 편지에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코로나19에 써달라. 있는 사람에게는 별거 아니겠지만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에게는 큰돈이오니 어렵고 힘든 의사 선생님과 불쌍한 어르신에게 써주기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난달 12일 익명의 기부자가 전하고 간 손편지. 서울시 은평구청 제공
지난달 12일 익명의 기부자가 전하고 간 손편지. 서울시 은평구청 제공
이날 전북 군산시에 사는 한 노인도 성금 300만원이 담긴 봉투와 마스크 40장을 미성동주민센터에 전달했다. 봉투 안에는 “그동안 받은 도움이 고맙고,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의 손편지가 담겨 있었다.

모두에게 공포와 생존에 위협을 안겨준 초유의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익명의 나눔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박씨처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선행을 베푸는 이름 없는 천사들의 선행은 일반 시민으로 퍼져 코로나19를 극복하는 일종의 ‘사회적 백신’으로 작용했다.

덜 받는 선행도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했다. 앞서 소상공인을 위한 임대료 인하 등 건물주의 ‘착한 임대인 운동’은 전북 전주 한옥마을에서 시작해 대구·경북·서울·대전·제주·울산 등 전국으로 퍼졌다. 초기엔 임대인이 먼저 운동에 동참했고 이후 기업과 공공기관, 지자체 등 전방위로 확산됐다. 정부는 임대료 인하분의 절반을 세액공제로 돌려주기로 했다. 또 개학 연기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농가의 생산물부터 사주는 ‘착한 소비자 운동’도 진행되고 있다.

지자체에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장삼이사들의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의 ‘재난기본소득 기부 캠페인’은 27일 기준으로 기부금 2억9100만원이 모였다. 전북 익산시는 28일부터 긴급재난지원금을 손쉽게 기부할 수 있도록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김영종 경성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인간은 각 개인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앞세우지만, 생존을 위해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공동체 의식)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동체 의식은 정부·사회에 대한 불신 등 여러 이유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시민이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신뢰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구성원이 기부라는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코로나19 극복 원동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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