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가 사람들로 가득하다.
1월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29일째 되던 2월18일, 대구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대구는 코로나19 전쟁의 최전선에 섰다. 하루 수백명 확진자가 쏟아지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시민들의 노력과 더불어 전국적인 지원 속에 대구는 서서히 일상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코로나19 전쟁 일선에서 현장 취재를 해온 김일우 기자가 72일간의 치열했던 분투기를 되짚어봤다.
“대구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전일 741명이 증가되어 총 205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2월29일 오전 10시30분 대구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서 굳은 표정의 권영진 시장이 입을 열었다.
“확보할 수 있는 병상 수는 환자 증가세를 따라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고 현장에서 의료진 부족도 심각합니다. 입원 대기 중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 연일 나타나고 있고 추가 감염을 걱정하는 시민들의 불안도 가중되고 있습니다.”
준비한 원고를 읽어내려가는 권 시장 얼굴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2월18일 대구에서 신천지 교인인 첫 확진자(31번 확진자. 61살 여성)가 나왔을 때만 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열흘 남짓 새 누적 확진자가 2천명을 돌파한 만큼 정례브리핑장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하루 만에 741명이라는데 내일은 1천명 넘는 거 아냐?” “진짜 큰일 났다.” 수군대는 기자들의 얼굴에도 불안감이 가득했다.
며칠 뒤 저녁 퇴근길에 2030 젊은 세대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인 대구 종로를 찾았다. 평상시라면 불야성이었을 텐데, 사람 한명 보이지 않았다. 어림잡아 50곳 넘는 가게들 가운데 문을 연 곳은 한손에 꼽을 정도였고, 문을 연 가게도 손님은 없었다. 적막과 공포에 휩싸인 도시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2월23일 오전 대구 중구 계산성당에 성당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6개 광역시 가운데 대형 의료기관이 가장 많은 대구였지만, 코로나19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대구에는 상급 종합병원이 5개, 종합병원이 10개 있고 이 병원들의 일반 병상은 7천개에 달했다. 광주, 대전, 울산 등에는 없는 지방의료원(대구의료원)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뒤 계명대 동산의료원이 대구동산병원을 통째로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내놓고 국군대구병원, 대구보훈병원,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등에도 병상을 마련했지만, 쏟아지는 확진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대구 서구보건소 감염예방의약팀장(2월22일), 대구 동부경찰서 경찰관(2월24일), 대구시 경제부시장 비서(2월25일)…. 웬만하면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을 거라 여겼던 이들마저 줄줄이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됐다. 기자들 가운데서도 자가격리자와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지인 중에서도 발열 증세가 나타났다며 검사를 받은 뒤 집에 틀어박히는 이들도 여럿이었다.
병상을 구하지 못한 확진자가 2천명에 육박하며 집에서 숨지는 확진자가 속출했다. 병상 배정을 기다리던 50살 남성 확진자는 지난달 1일 전화인터뷰에서 “(병상이 없어서) 집에 있는데 몸이 약한 아내가 나한테서 감염될까 봐 걱정”이라며 흐느꼈다.
넘쳐나는 확진자 수용은,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이나 숙박시설을 생활치료센터로 만들어 경증이나 무증상 확진자를 격리해 치료하는 생활치료센터 운영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었다. 확진자는 무조건 병실에 입원시키는 코로나19 대응지침이 지난달 1일 개정되고, 전국에 15개 생활치료센터가 만들어지면서 환자 대기 문제는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12일 오전 대구 남구 대명10동 신천지 대구교회 출입문을 경찰관이 지키고 있다.
확진자가 늘면서, 너나없이 경계하는 눈초리도 많아졌다. “나도 감염된 게 아닐까?” “저 사람도 감염자가 아닐까?” ‘불신지옥’이 따로 없었다.
“넌 신천지 교인 아니지?”란 말로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구 확진자 가운데 신천지 교도가 차지하는 비율은 60%가 넘었기 때문이다.(29일 0시 기준. 6852명 가운데 4261명)
생활치료센터 운영과 더불어 대구 코로나19 사태의 진앙지였던 신천지 교인 전수조사가 마무리되면서(지난달 10일) 대구는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지난달 12일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하루 추가 확진자보다 추가 격리해제자 숫자가 더 많아졌다. 모두가 기다렸던 ‘골든 크로스’였다. 이어 지난 8일부터 대구의 하루 추가 확진자는 계속 한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집단감염이 발생했던 제이미주병원(196명), 한사랑요양병원(128명), 대실요양병원(100명)에서도 지난 15~22일을 마지막으로 추가 확진자는 더는 나오지 않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19일 코로나19 정례브리핑을 종료했다.
대구는 어떻게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었을까. 대구시는 ㈜리서치코리아에 맡긴 조사에서 지난 17~21일 대구에 거주하는 만 20살 이상 1008명에게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의료진과 소방·군장병·공무원, 자원봉사자 등의 노력’과 ‘시민의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을 첫손에 꼽았다.
중앙정부와 다른 지자체들이 내민 도움의 손길도 큰 구실을 했다. 중앙정부가 의료기관, 의료인력, 의료장비를 대구에 집중적으로 지원했고, 다른 지자체들도 대구의 확진자를 받아 치료하거나 의료인력과 의료장비를 지원해줄 수 있었다. 대구가 코로나19 전쟁을 벌이던 때 다행히도 다른 지역에서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대구의 보수적인 문화와 폐쇄적인 환경도 방역에 유리했다. 보수적인 대구시민들은 관에 협조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지난달 첫째 주 대구의 시내버스와 도시철도 이용객은 각각 평소의 31.8%와 25.4%까지 떨어졌다. 확진자가 감소세에 접어들었던 지난 12일 대구시·경찰 합동점검 결과, 유흥주점 1332곳 가운데 1202곳(90.2%)이 휴업 중이었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도시란 점도 다른 대도시로의 확산을 막는 요소로 작용했다.
대구 시민사회단체인 우리복지시민연합 은재식 사무처장은 “이번에는 대구에서 대부분의 확진자가 나와서 다른 지역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다음에 코로나19가 유행하면 이번처럼 운이 좋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잠시 멈춘 이 시기에 대구시는 대구의 자체적 방역 역량을 구축하고, 공무원의 역량을 높이고, 매뉴얼도 촘촘하게 만들어놔야 한다”고 말했다.
일요일이었던 2월23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거리가 텅 비어있다.(왼쪽) 반면 일요일이었던 지난 26일 대구백화점 앞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
‘대구는 이만한 일로 죽지 않습니다. 더 강해질 뿐입니다.’
지난 26일 오후 찾은 대구 중구 동성로에 내걸린 펼침막에 쓰인 글귀였다. 길거리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두달 전 영업을 중단했던 가게들도 대부분 문을 열었다. 가게 입구에는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입장해달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식당과 술집에서는 직원이 체온을 잰 뒤 손님을 들여보냈다. 두달 전엔 10명도 채 건너지 않던 씨지브이(CGV)대구한일 앞 건널목에는 파란불이 들어올 때마다 양쪽에서 100여명이 줄을 지어 길을 건넜다.
“대구에서 코로나19가 퍼지고 한달이 넘게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사태가 수습돼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됐어요.” 동성로에서 만난 박선영(32)씨의 이야기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대구는 이제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29일 대구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가운데 완치 판정을 받고 격리해제된 비율은 처음으로 90%를 넘어섰다.
글·사진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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