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익명의 기부자가 전하고 간 손편지. 서울 은평구청 제공
이주노동자와 새터민, 노인 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 되레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부와 나눔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름다운 연대’가 코로나19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고 있다.
16일 서울 은평구청의 말을 들어보면, 지난 12일 오후 2시30분께 불광2동 주민센터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는 사회복지팀 직원한테 “적은 돈일 수도 있으나 끼니를 줄여가며 2천원, 3천원씩 모은 돈이니 코로나 극복을 위해 잘 써달라”고 말하며 74만3000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주민센터 공무원은 여러 차례 노인의 신원을 물었지만, 그는 주민센터 밖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이 어르신이 ‘다 귀찮으니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하고 돈을 건네준 뒤 가셨다”고 전했다.
노인이 남기고 간 손편지에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코로나19에 써달라. 있는 사람은(사람에게는) 별거 아니겠지만 우리(처럼) 어려운 사람은(사람에게는) 큰돈이오니, 어렵고 힘든 의사 선생님과 불쌍한 어르신에게 써주기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주민센터와 주민자치회는 이날부터 일주일 동안 직원과 주민을 대상으로 성금을 모은 뒤 노인의 기부금을 보태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전북 군산시에 사는 한 노인도 성금 300만원이 담긴 봉투와 마스크 40장을 미성동주민센터에 전달했다. 봉투 안에는 “그동안 받은 도움이 고맙고, 코로나19로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감사한다”는 내용의 손편지가 담겨 있었다.
부산 이주민들이 코로나19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를 응원하고 있다. 부산이주민포럼 제공
부산의 이주민들도 감염병 최대 피해 지역인 대구를 돕기 위해 십시일반 정성을 모았다. 부산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 이주민 활동가, 이주민공동체가 모여 만든 ‘부산이주민포럼’은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지역 이주민을 대상으로 대구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과 의료진 지원을 위한 긴급모금 활동을 벌였다. 비정규직 영어 강사로 일하는 필리핀 국적의 이주민들은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아 생계를 꾸리기가 어려워졌는데도 적극적으로 성금 내기에 동참했다. 인권단체에서 체불임금 상담을 하던 한 이주민도 모금 소식을 듣고 선뜻 성금을 냈다.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공적 마스크를 사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민들도 정성을 보탰다. 이렇게 개인과 공동체 70여명이 모은 성금 524만원은 지난 15일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에 전달됐다. 이주민들은 모금액수가 적은 것을 미안해했다고 전해졌다. 부산이주민포럼 관계자는 “이들은 국적과 지역, 혐오와 차별을 넘어, 가장 어려운 곳에 가장 절실한 도움을 주기 위한 모두의 노력에, 자신의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했다.
전북 군산의 한 홀몸노인이 저축한 돈 300만원과 아껴둔 마스크 40장을 익명으로 기부했다. 군산시 제공
새터민의 마스크 기부도 있었다. 전북 전주덕진경찰서의 말을 들어보면, 최근 한 50대 탈북민이 직접 마스크 200여장을 만들어 마스크 구입에 어려운 지역의 탈북민에 나눠달라며 경찰서에 기부했다. 재봉틀로 옷을 고치며 생계를 꾸리는 것으로 전해진 이 탈북민은 코로나19 여파로 일감 부족 등 생계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면 마스크를 추가로 만들겠다는 뜻을 경찰에 전했다.
김영동 박임근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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