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9동에 있는 한 원룸 옥상에서 조종래(82)씨가 봉준호(51) 감독이 어린 시절 살았던 단독주택(하늘색 지붕)을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다.
“봉준호 감독이 어릴 적에 워낙 똑똑했어. 아버지 재능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로봇 태권브이 그림을 만화 영화 그대로 그릴 정도로 그림에도 재능이 있었고. 나한테도 태권브이를 그려서 줬는데, 그 그림을 이사 다니다가 잃어버려서 너무 아쉬워.”
13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9동 주택가 골목에서 만난 조종래(82)씨는 봉준호(51) 감독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봉 감독이 대구 남구 대명9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때 바로 앞집에 살았던 이웃이다. 봉 감독의 부모는 1974년 대명9동에 단독주택을 지어 살다가 1978년 서울로 이사했다. 봉 감독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어린 시절 대구 중구에 있던 만경관과 아카데미극장에 영화를 보려 다녔다고 했다.
조씨는 봉 감독이 대구에 살던 때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은 여기가 단독주택과 원룸이 가득 들어서 있지만, 당시에는 구릉이었는데 밭도 있었어. 저기 도로는 원래 앞산에서 흘러내려 온 물길이 있던 자리야. 그때 내가 봉 감독네 가족보다 이 동네에 몇달 먼저 들어와 집을 짓고 살았는데, 주변에 다른 집은 한두채 밖에 없었지. 저기 봉 감독네가 살았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잖아.” 조씨는 2층 단독주택을 가리켰다.
봉 감독이 살았던 집은 1974년 7월 준공됐다. 258.8㎡ 터에 건축면적은 82.31㎡다. 벽돌과 기와를 사용해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는데, 지하 1층은 차고로 쓰인다. 콘크리트와 철망으로 된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니 작은 정원과 소나무, 장독대 등이 보였다. 46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저 정도로 잘 지어진 집은 주변에 없었지.” 조씨가 말했다. 이 집은 이후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최근까지 살던 주인은 전세를 놓기 위해 집을 비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봉 감독의 아버지인 고 봉상균(1933~2017)씨는 한국의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와 영남대 미술대학 교수였다. 봉 감독의 어머니 박소영씨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34년)을 쓴 박태원(1910~1986)의 둘째 딸이다. 봉 감독은 2남2녀 가운데 막내아들이었다. 봉 감독은 1969년 대구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나 대명9동에 살며 남도초등학교를 다녔다. 대구 남구는 지금 봉 감독이 태어난 봉덕동 집을 찾고 있다.
조씨는 “봉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봉 감독이 살았던 저 집을 기념관으로 쓰면 어떨까 싶어. 그리고 여기에 봉준호 거리도 좀 만들었으면 좋겠어.”
글·사진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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