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혐오와 차별은 성소수자의 불안과 우울, 자살 시도로까지 이어진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동성애 인권 조례 절대 반대합니다.”
지난달 20일부터 4일 동안 대구 서구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는 ’인권보장 및 증진에 관한 조례‘(인권 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이런 글이 32건이나 올라왔다. 서구가 인권 조례 제정안을 만들어 지난 9월30일 입법예고하자 이런 일이 벌어졌다. 항의 전화도 쏟아졌다. 조례안에는 △인권보장 및 증진 기본계획 수립 △공무원 인권교육 △인권보장 및 증진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았다. 결국 서구는 인권 조례를 서구의회에 넘기지도 못했다.
대구 북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북구도 지난달 10일 인권 조례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런데 서구와 마찬가지로 항의 전화가 폭주했다. 북구 누리집 자유게시판에는 지난달 24일부터 8일 동안 반대 글이 148건이나 올라왔다. 결국 북구도 인권 조례를 북구의회에 부의하지 못하고 무기한 보류했다. 인권 조례를 발의한 류한국 서구청장과 배광식 북구청장은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북구 관계자는 “(조례 제정에) 반대가 워낙 심해서 일단 보류한 뒤 향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조례안에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안되더라”고 털어놨다. 실제 서구와 북구의 조례안에는 동성애와 관련한 내용은 들어있지 않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12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인권 기본조례 제정을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는 인권 기본조례 표준안까지 만들어 전국 자치단체에 보냈다. 이후 7년이 지나며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에는 모두 인권 조례가 만들어졌다.
지난 20일 대구 북구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인권 조례‘ 제정에 반대한다는 글이 가득하다. 대구 북구 누리집 화면 갈무리
하지만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인권 조례를 만든 곳은 아직 절반이 되지 않는다. <한겨레>가 자치법규정보시스템을 확인해보니, 전국 기초자치단체 226곳 가운데 인권 조례가 있는 곳은 97곳(43%)에 불과했다. 광주, 울산, 충남지역은 모든 기초자치단체에 인권 조례가 제정돼 있다. 하지만 충북(9%), 경북(13%), 인천(20%), 전북(21%), 강원(22%) 등의 지역은 기초자치단체의 인권 조례 제정 비율이 매우 낮았다.
인권 조례 제정 비율이 낮은 이유는 해당 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무관심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 쪽의 등쌀에 못 이겨 아예 만들지 못하거나 만들었다가도 폐지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충남도의회는 보수 개신교의 압력으로 2012년 5월 제정된 인권 조례를 지난해 5월 폐지했다. 충남도의회는 이후 지난해 10월 인권 조례를 다시 제정했다. 충북 증평군의회도 지난 2017년 10월 인권 조례를 제정했다가 지난해 4월 폐지하기도 했다.
보수 개신교 쪽에서 ’인권 조례=동성애 조례‘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난 2001년 5월 만들어진 국가인권위원회법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항에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19가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 ’성적 지향‘이 포함돼 있다. 보수 개신교 쪽은 이 성직 지향이라는 단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인권이라는 용어가 들어가는 조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안상수 의원(한국당) 등 국회의원 44명은 지난 21일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내용의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다.
조정희 인권위 대구인권사무소장은 “헌법에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직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지방자치단체 역시 주민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자치단체의 인권조례는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주민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규범력을 갖고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지역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라고 말했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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