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민주화계승사업회 등이 지난해 10월25일 오전 대구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구미문화원 폭파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를 인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1983년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 때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람들이 36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대구지법 형사2단독 이지민 판사는 1일 국가보안법, 반공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종덕(60)씨 등 5명의 재심에서 무죄와 면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는 무죄, 집시법 위반 혐의는 면소로 판결했다. 면소는 법원이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형사소송에서 소송절차를 종결시키는 것을 뜻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검사의 조사단계에서도 경찰 수사로 인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한 것이라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달리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해소할만한 검사의 증명이 없으므로 결국 검사가 작성한 위 피고인에 대한 각 피의자신문조서 또한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대구 미문화원 폭파사건은 1983년 9월22일 대구미문화원 정문 앞에 있던 가방에서 폭발물이 폭발한 일이다. 이 폭발사건으로 고등학생 1명이 숨지고 경찰관과 행인 등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 등은 당시 경북대 학생이었던 박씨 등 5명을 용의자로 지목해 한 달 동안 불법 구금해놓고 조사를 했다. 대구지방검찰청은 그해 11월22일 폭파 혐의가 아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등 위반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대구지법은 이듬해 1월19일 박씨에게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 다른 4명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경찰은 당시 75만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수사를 했지만 끝내 범인을 찾지 못하고 1984년 11월 수사를 종결했다.
이 사건을 다시 조사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10년 6월30일 “박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박씨 등은 2013년 5월6일 대구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2016년 3월14일 당시 대구지법 형사2단독 김태규 판사는 재심 개시 결정을 했다. 대구지검은 재심 결정에 불복해 항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18일 대구지법 형사5부(김경대 재판장)가 검찰의 항고를 기각해 재심이 시작됐다.
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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