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지역 민주화운동 역사를 발굴하고 홍보해온 울산민주화운동기념센터가 운영 1년9개월 만에 폐쇄될 위기에 처했다. 울산시가 운영 예산을 대폭 삭감해 센터 활동을 위축시켜놓고, 실적 부진을 이유로 운영 위탁 종료를 수탁 기관인 울산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통보한 것이다. 보수 집행부와 시의회에 의한 ‘역사 지우기’란 반발이 나온다.
울산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관계자는 31일 한겨레에 “김두겸 울산시장이 지난 7월 면담에서 센터와 사업회 구성원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다 이쪽(진보 쪽) 단체 소속이 아니냐고 묻더니 같은 날 센터 폐쇄 방침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후 울산시는 폐쇄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시가 든 폐쇄 이유는 ‘실적 부족’과 ‘적은 업무량’이었다. 울산시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에 “전문가들이 센터 성과가 부족했다는 공통적인 의견을 냈다. 울산시도 센터가 일부 사업을 용역으로 진행하는 등 업무량이 적다는 점들을 고려해 큰 비용을 들여 센터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울산시는 2년 동안의 센터 운영에 대해 100점 만점에 53.6점을 주며 ‘미흡’하다고 평가했다.
센터가 폐쇄되면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요 축이었던 울산 노동운동사를 연구하고 홍보할 지역의 거점이 사라지게 된다. 김명숙 센터 사무처장은 “울산에는 1980년대 후반 현대그룹 소속사가 중심이 된 노동운동뿐 아니라, 6월 민주항쟁과 4·19혁명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적지 않다”며 “센터가 폐쇄되면 어렵게 모은 민주화운동 자료들이 소멸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앞서 센터는 울산지역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자료와 평가가 부족하다는 공감대가 모여 2022년 3월 문을 열었다. 이후 500여점의 지역 민주화운동 사료를 수집하고 17명의 구술을 채록했다. 하지만 개관 1년도 안 돼 센터는 운영 위기를 맞았다. 울산시가 첫해 2억7000만원 남짓했던 센터의 운영·사업 예산을 2023년에는 1억3천만원 정도로 절반 넘게 삭감해버린 게 컸다. 센터는 줄어든 예산에 맞춰 사업 규모를 축소했는데, 울산시는 이를 근거로 ‘실적 부족’이란 평가를 내린 것이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센터 폐쇄를 ‘역사 지우기’라고 반발한다. 김정호 울산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이사장은 31일 한겨레에 “지역 민주화운동은 소속 정당을 떠나 후세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역사 유산”이라며 “집행부가 생각을 고쳐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