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근처 무료급식소. 김영동 기자
“예전에는 점심때만 되면 외로운 할배 할매들이 여서 모여가 밥 묵고 갔다. 코로나19 때는 감염된다고 도시락을 노나 주더만, 코로나 끝나도 요래 아무도 없다. 말 들어보니 인자는 무료급식을 토요일에만 한다 카대.”
부산 부산진구 초읍동 어린이대공원 들머리에서 만난 이종일(77)씨가 말했다. 공원 들머리에서 조금 들어가니 벽화가 그려진 10여평 크기의 단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벽에는 ‘1989년 부산 최초의 노인무료급식 발상지, 아름다운 사람들’이란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아름다운사람들은 1989년부터 30년 넘게 이곳에서 노인과 노숙인 등에게 무료로 점심을 제공해온 봉사단체다. 회원 3천여명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운영비를 댔다고 한다. 날마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해온 인원은 평균 250여명. 하지만 지난 10일 정오 이곳을 찾았을 때, 평소 같으면 길게 줄을 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시청에서 공원 공사한다고 단체에다 건물 비우고 땅을 돌려달라 했다 카더라.” 이씨가 설명했다. 아름다운사람들이 운영해온 무료급식소 건물과 터는 1993년 단체 활동에 공감한 부산시가 마련해준 것인데, 이번에 어린이대공원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면서 부지 반환을 요구한 것이다. 아름다운사람들도 무료급식을 매달 29차례에서 10차례로 줄였다.
11일 부산시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시는 내년까지 대공원 들머리에 2층짜리 통합관리센터와 바닥분수 등을 설치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낡은 무료급식소와 화장실을 철거해야 한다. 부산시 쪽은 “노인과 노숙인 등이 모여들면서 민원이 빈번했고, 앞으로 들어설 통합관리센터는 무료급식소가 있는 공원 입구가 최적 장소여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름다운사람들과 부산시는 지난 6년 동안 무료급식소 이전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댔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시 공원정비팀 관계자는 “대체 터를 제시하며 노력했지만, 무리한 행정 지원을 요구하며 결국 원만한 협의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아름다운사람들 쪽은 부산시가 추천한 범천동으로 옮길 생각도 있었는데 근처 아파트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고, 새로 들어설 통합관리센터 1층이나 지하 공간 일부를 내달라고 했지만 부산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단체 관계자는 “무료급식소가 기피 시설로 낙인찍혀 새 공간을 찾기가 여의치 않아 오갈 데가 없는 형편이다. 사명감이라는 말 그대로 30년 넘게 봉사활동을 하는데, 박탈감에 힘들어하는 활동가도 많다”고 했다. 또다른 단체 관계자는 “지자체가 못 하는 일을 우리가 나서서 했는데, 너무 야속하다”고 했다.
부산시는 지난 7월부터 두 차례 공문을 보낸 뒤 지난달 22일 법원에 무상급식소 건물과 터의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아름다운사람들 관계자는 “우리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무료급식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곳만 있으면 된다. 부산시도 법으로 해결하려 들 게 아니라,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지혜를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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