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아미동 산복도로 마을의 ‘아미로 돌집’ 모습. 김영동 기자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라서 (돌집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저걸 몇년 전 구에서 리모델링한다고 공사하드만, 이리 놀리고 있네. 동네에 도움 될 수 있도록 단디 좀 하지.”
지난 4일 부산 서구 산복도로변의 ‘비석문화마을’에서 만난 안수길(80)씨가 돌로 지은 집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아미로 돌집’으로 불리는 건축물로, 한국전쟁 때 한 피란민이 근처 천마산에서 주워온 돌로 10년 넘게 쌓아 만들었다고 한다. 판자나 루핑(기름 먹인 종이)으로 만든 근처 집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벽돌에 슬레이트 지붕의 집들로 바뀌었지만 이 돌집은 지금까지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돌집은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의 애환과 산복도로 마을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존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돌집이 있는 비석문화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만든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에 있었기 때문에 비석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부산 서구는 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아미·초장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예산 낭비라는 지적만 남게 됐다. 부산시 감사위원회는 “지난 6월 종합감사 결과, 서구가 사업 계획의 합법성과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아미·초장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해 예산 낭비를 초래했다”며 서구에 기관경고 처분했다고 5일 밝혔다.
감사 결과를 보면, 서구는 아미로 돌집을 비롯해 근처의 건물 4채를 사들여 리모델링해 추모 공간 등으로 꾸며 지역상권 회복 거점시설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특히 아미로 돌집은 독특한 겉모습으로 역사를 반영한 사업이 가능하다고 보고, 기존 모습을 간직한 채 북카페와 음식점 등을 고려한 리모델링을 진행해 지역 명소로 삼으려고 했다.
서구는 아미로 돌집과 건물 4채를 리모델링하기 위해 7억6000여만원을 투입했고 2020년 12월 리모델링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어 돌집 등의 운영자와 업종 선정을 위해 서구의회에 시설물 관리와 운영을 민간에 위탁하는 내용의 동의안을 상정했다. 하지만 서구의회는 동의안을 부결했다. 돌집 등이 무허가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2021년 3~12월 부산문화재단의 ‘원도심 빈집활용 청년마을 놀이터 사업’에 시설을 제공한 것이 전부다. 이후 1년8개월 동안 돌집 등은 그대로 방치됐다.
시 감사위원회 관계자는 “행정기관이 무허가 건물을 사들여 사용할 경우 합법적 행정절차 이행이 어렵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는데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예산을 낭비했다. 공유재산 관리의 정당성과 공공성을 훼손한 것”이라고 짚었다.
서구 창조도시과 관계자는 “동네 대부분이 무허가 건물이지만 지역 역사성과 특수성을 활용해 도시재생을 하려고 했다.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피란민과 한국전쟁 등 역사를 알리는 홍보관으로 조성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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