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서 ‘성인 장애인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나래과정’을 졸업한 한봉교(66)씨가 친구에게 쓴 엽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제공
“요즘 되게 신기해. 동대구역 지하철 가는 길에 내가 학교에서 배운 글자가 가득해.”
지난 1일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의 ‘성인 장애인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나래과정’을 수료한 한봉교(66)씨가 친구에게 쓴 엽서 내용이다. 이날 대구 동구 신서동에 있는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선 초등과정인 나래과정 졸업식과 초·중등과정 입학식이 열렸다. 나래과정은 만 18살 이상 저학력 장애인의 학력 인정을 위해 개설된 프로그램이다. 성인 장애인을 위한 학력인정 문해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곳은 전국에서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이 유일하다.
한씨는 정규 학교교육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그는 부모를 여읜 뒤 형과 함께 살다가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자 45살 때인 2002년 뒤늦게 장애인 시설에 입소했다. 그러다 2021년 6월 시설에서 나와 대구시가 지원하는 자립생활주택에서 생활하면서 나래과정에 입학하게 됐다.
지난 1일 대구시 동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서 ‘성인 장애인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나래과정’ 졸업식과 입학식이 열렸다. 김규현 기자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오는 길이 조금 피곤했던 적도 있지만, 한번도 결석한 적은 없어요. 중학교 가서도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학력인증서와 졸업장, 꽃다발을 받아든 한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쓴 엽서는 대구시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이 여는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엽서 부문에서 원장상을 받게 됐다.
이날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선 10명이 초등과정을 졸업하고, 6명이 초등과정, 11명이 중학과정에 입학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허리는 굽었지만, 표정만큼은 10대 학생처럼 밝았다. 졸업장을 받은 김정수(63)씨가 “너무 좋으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 학교에 다니면서 국어책을 읽는 게 제일 좋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평소 ‘투덜이’로 소문난 그가 눈물을 보이자 동료들도 덩달아 눈물을 훔쳤다. 이날 초등과정에 입학한 배상곤(66)씨는 “국민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뒀는데, 나이 60이 넘어서야 다시 다니게 됐다. 학교에서도 공부하고, 집에 가서 침대에 누워서도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1일 대구시 동구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서 ‘성인 장애인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나래과정’ 졸업식과 입학식이 열렸다. 김규현 기자
학교 형태의 장애인 평생교육시설인 질라라비장애인야학은 2018년 대구시교육청 등과 협의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성인 장애인 초등학력인정 문해교육 과정을 개설했다. 이어 2021년에는 중학학력인정 과정도 만들어졌다. 교육부는 2020년 ‘초등·중학 문해교육 기본 교육과정’을 고시한 뒤 지난해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질라라비장애인야학에선 내년 9월이면 첫 중등과정 졸업생이 나온다. 학교 쪽은 고등과정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다. 특수교육 대상자인 장애인은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이다. 조민제 질라라비장애인야학 교장은 “안타깝게도 아직 고등과정은 제도가 없다. 내년에 중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모두 고등학교에 갈 수 있도록 대구시, 시교육청과 협의해 제도를 마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