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산을 살리는 시민 탐조의 날’ 행사 참가자들이 찍은 새 사진. 위 왼쪽부터 큰유리새, 칡때까치, 솔개(이상 이정희씨 제공), 아래 왼쪽부터 노랑턱멧새, 두견이(이상 허성범씨 제공), 호랑지빠귀 둥지(원종태씨 제공).
계곡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자 온갖 새소리가 뒤섞여 들려오기 시작했다. 탐조대원들이 분주하게 사진을 찍었다. 디(D)조 조장인 탐조 전문가 오광석씨가 새 이름을 계속해서 불러줬다. 취재수첩에는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직박구리·오목눈이·큰부리까마귀·큰유리새·팔색조·휘파람새·흰배지빠귀 같은 새 이름이 빼곡하게 적혔다.
‘노자산을 살리는 시민 탐조의 날’ 행사가 지난 27~28일 경남 거제시 남부면 노자산에서 열렸다. 행사 목적이 특이했다. 노자산 일대에서 추진 중인 거제남부관광단지 조성사업의 환경영향평가가 엉터리였다는 것을 시민들이 스스로 증명하려고 ‘새 찾기’ 프로젝트를 마련한 것이다.
‘노자산을 살리는 시민 탐조의 날’ 행사 참가자들이 새 사진을 찍고 있다. 최상원 기자
거제남부관광단지 조성사업은 울창한 난온대 산림지역인 노자산 일대 369만㎡(바다 39만㎡ 포함)에 2028년까지 27홀 골프장과 숙박시설·워터파크 등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 사업은 2018년 5월2일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고, 다음 단계인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보면, 관찰된 조류 가운데 법정 보호종은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8호) 한마리가 전부다. 사업 예정지에서 1.1㎞ 떨어진 곳에 천연기념물(제233호)로 지정된 ‘팔색조 번식지’가 있는데도, 정작 그곳의 주인인 팔색조는 한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이어 2020년 10월 제출된 환경영향평가서(초안)는 ‘팔색조 15마리를 확인했으나 번식지와 서식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팔색조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된 희귀 조류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등 거제지역 시민단체들이 환경영향평가를 믿을 수 없다며 2021~2022년 직접 조사를 벌여 팔색조 둥지 13개를 확인했다. 그리고 1년 뒤 좀 더 정확한 조사 결과를 내놓기 위해 ‘노자산을 살리는 시민 탐조의 날’ 행사를 열었다.
‘노자산을 살리는 시민 탐조의 날’ 행사를 무사히 마친 참가자들이 노자산 살리기를 다짐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행사에는 경남은 물론 서울, 부산, 경기 부천, 충남 서산, 전북 군산·무주, 전남 구례 등 전국에서 50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27일 탐조 활동에 나서기 앞서 거제시 삼거동 남방동사리 책방에 모여 탐조 행사 취지와 새를 찾는 방법 등 설명을 듣고, 조 편성을 했다. 행사를 기획한 숙의민주주의환경연구소 장용창 소장은 “환경영향평가 조사가 잘못됐음을 숫자로 증명하고, 노자산 숲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를 보여줄 기회”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바다를 제외한 육지 넓이만 100만평(330만㎡)에 이르는 개발예정지를 7개 구역으로 나눈 뒤 조별로 1개 구역을 맡아 27일 밤 9~10시, 28일 오전 6~11시에 두차례 탐조 활동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휴대전화에 ‘산길샘’ 등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시간·지점·경로를 정확히 기록했다. 이틀 동안 참가자들은 멸종위기 야생동물이자 천연기념물인 조류 3종(매, 새매, 팔색조), 멸종위기 야생동물 2종(긴꼬리딱새, 솔개), 천연기념물 3종(두견이, 소쩍새, 솔부엉이) 등 57종을 확인했다. 큰 소나무의 갈라진 줄기 틈새에 나뭇가지와 이끼 등으로 만든 팔색조 둥지도 1개 발견했다. 지난해 팔색조가 떠난 빈 둥지였는데, 땅바닥에서 1.5m 정도 높이에 있어 눈으로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경남 거제 노자산에서 발견한 팔색조 둥지를 ‘노자산을 살리는 시민 탐조의 날’ 행사 참가자가 살펴보고 있다. 최상원 기자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노자산 숲을 훼손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욕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최연소 참가자인 허경은(거제 외포초 4)양은 “꾀꼬리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까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봤다. 정말 신기했다”고 말했다. 생물학자를 꿈꾸는 이상록(거제 계룡중 1)군은 “직접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팔색조 2~3마리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아름다운 숲은 어떻게든 원래 모습 그대로 지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군과 함께 온 강미영 거제 계룡중학교 교사는 “노자산의 진정한 가치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먼저 공부하러 왔다. 이곳에 와본다면 누구라도 그 모습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종태 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이 ‘노자산을 살리는 시민 탐조의 날’ 행사 취지와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부산 낙동강 하구를 중심으로 환경운동을 펼치는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장은 “도로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원시림이 펼쳐져 있고 법정보호종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이 땅을 샀다고, 이 땅의 자연환경까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됐다. 잘 보존된 원시림을 개발해서 골프장을 만든다면 아이들에게 너무도 부끄러울 것”(오광석 진주 명석초등학교 교사), “영어 듣기 공부하듯 이제부터 새소리 듣기 공부를 해야겠다”(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반응을 보였다.
원종태 전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환경영향평가가 대형 토목공사에 면죄부를 주는 요식 절차로 전락해버렸다. 환경영향평가가 엉터리였다는 게 이번 탐조에서 확인됐으니, 공정하고 객관적인 업체를 선정해서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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