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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밖 네 번째 희생자’ 43년 만에 국가배상 소송 나선다

등록 2023-05-29 19:14수정 2023-05-29 20:04

임기윤 목사, 1980년 7월 계엄군 조사실에서 숨져
사회원로 등 100여명이 유족 대신해 국가배상소송
1970년대 임기윤 목사(왼쪽)와 김대중(오른쪽) 전 대통령(2009년 작고). 생전 이희호(2019년 작고) 여사는 “진주교도소로 이감된 남편을 수발하기 위해 부산역에 갈 때마다 임기윤 목사가 마중 나왔다”고 말했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1970년대 임기윤 목사(왼쪽)와 김대중(오른쪽) 전 대통령(2009년 작고). 생전 이희호(2019년 작고) 여사는 “진주교도소로 이감된 남편을 수발하기 위해 부산역에 갈 때마다 임기윤 목사가 마중 나왔다”고 말했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4-33’.

국립 5·18민주묘지 1묘역에 안장된 임기윤 목사의 묘지번호다. 고인은 1980년 전두환 국군 보안사령관의 주도로 진행된 5·18 학살이 일어난 광주 밖 네 번째 희생자다. 광주 밖 희생자는 5월 민주화운동이 벌어진 시기(5월18~27일)를 전후해 광주가 아닌 지역에서 신군부 퇴진과 광주학살 진상 규명을 촉구하다 숨진 민주열사들을 지칭한다.

첫 번째 광주 밖 희생자는 당시 전북대 농학과 2학년이던 이세종(당시 21살. 묘지번호 4-11) 열사다. 1998년 뒤늦게 5·18 민주화운동 최초 희생자로 밝혀진 그는 신군부의 비상계엄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며 전북대에서 농성을 벌이다 교내로 진입한 계엄군을 피해 달아난 뒤 5월18일 새벽 6시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어 전남 함평 고구마 농민투쟁 승리 기념식 참석차 광주를 갔다가 군인들의 무차별 학살을 목격한 서강대 무역학과 4학년 김의기(당시 21살. 묘지번호 4-12) 열사가 5월30일 오후 5시께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6층에서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동포여 일어나자’라고 적힌 홍보물을 뿌리고 뛰어내려 숨졌다. 세 번째 광주 밖 희생자는 부산 출생 노동자 김종태(당시 22살. 묘지번호 4-13) 열사다. 그는 계엄군의 광주 학살에 항의하며 6월9일 오후 5시50분께 서울 신촌역 근처에서 분신했다. 나흘 뒤인 6월13일 운명했다. 김종태 열사가 떠난 지 44일 뒤 임 목사가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에서 조사를 받다가 숨졌다. 광주 밖 네 번째 희생자였다.

네 명의 열사는 묘지가 1묘역에 있고 종교가 개신교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임 목사만 추모(기념)사업회가 없다. 그만큼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이가 없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기윤 목사(왼쪽)는 1958년 부산제일감리교회에 부임해 부산대병원에서 숨진 1980년 7월26일까지 담임목사를 맡았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임기윤 목사(왼쪽)는 1958년 부산제일감리교회에 부임해 부산대병원에서 숨진 1980년 7월26일까지 담임목사를 맡았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계엄군 사무실 출두 일주일 만에 숨져

임 목사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1951년 중앙신학교(현 강남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58년 부산제일감리교회 담임목사를 맡으면서 사회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맞서 1974년 유신헌법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벌였다. 한국민주화운동 대부 함석헌 옹과 야당 정치인 김대중 등과도 교류했다. 8살 아래의 최성묵 목사와 16살 아래의 송기인 신부 등과 함께 개신교와 가톨릭을 구분하지 않고 ‘사회정의구현 부산기독인회’(1975년)와 부산교회인권선교협의회(1976년)를 만들어 회장을 맡았다.

1980년 5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광주를 진압하자 기도회와 시국강연회 등을 열어 광주학살의 진상을 알렸고 설교 도중 군사정부를 나무랐다.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은 7월18일 임 목사 등 부산 민주인사 12명을 김대중내란음모사건·계엄포고령 10호 위반 등의 혐의로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임 목사는 19일 오전 9시께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으로 갔다. 수사관은 임 목사에게 “김대중이 김일성과 한통속인데 빨갱이가 확실하지 않으냐. 종교활동은 위장이고 실제로는 빨갱이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21일 낮 12시25분께 조사실을 나오던 임 목사는 복도에서 쓰러졌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국군 부산통합병원으로 옮겨졌다. 기관지 절개수술을 했으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의 요구로 임 목사는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6일 밤 11시3분께 57살에 운명했다. 합동수사단에 출석하고 8일째였다.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은 장례가 끝난 뒤 유족 관계자에게 120만원을 전달했다. 부산지구 계엄합동수사단장 백동림 대령(보안사령부 부산지구대 대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임 목사의 죽음을 보고했고 보안사령부는 격려금 100만원을 보냈다.

1970년대 임기윤 목사(뒤쪽 가운데 안경 쓴 남성)가 함석헌 옹(앞쪽 백발)의 뒤를 따라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임 목사 옆은 이희호(안경 쓴 여성) 여사로 보인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1970년대 임기윤 목사(뒤쪽 가운데 안경 쓴 남성)가 함석헌 옹(앞쪽 백발)의 뒤를 따라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임 목사 옆은 이희호(안경 쓴 여성) 여사로 보인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모욕·가혹행위 없었는데 혼자 쓰러졌다?

검찰과 경찰은 7월29일 부산대병원에서 부검한 뒤 임 목사의 주검 원인을 뇌출혈(뇌일혈)로 판정했다. 또 “당시 합동수사단의 조사과정에서 수사관이 임 목사에게 경어를 사용하는 등 모욕이나 가혹행위가 없었다. 임 목사 혼자서 자술서를 쓰다가 고혈압 증세로 졸도했다”고 수사결론을 내렸다.

유족은 크게 반발했다. 임 목사의 아내(작고)는 2001년 의문사진상위원회 조사에서 “부산대병원에서 간호할 때 뒷머리 왼쪽이 3㎝가량 찢어져 있었고 그곳에 피가 흘러 달라붙어 있는 등 구타 흔적이 있었다. 남편은 178㎝에 풍채도 좋았고 평소 병원에 가본 적이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던 사람인데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미궁에 빠졌던 임 목사의 죽음은 18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가 임 목사를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고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비로소 그는 사후 19년 만인 1999년 5월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하지만 그의 사인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았다. 2001년 9월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임기윤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사망했다”고만 밝혔다. 임 목사는 5·18민주화유공자로는 인정됐지만 ‘사인을 알 수 없는 의문사’로 남았다.

1980년 4월28일 임기윤 목사(왼쪽 세 번째)가 ‘민주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발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1980년 4월28일 임기윤 목사(왼쪽 세 번째)가 ‘민주회복을 위한 기도회’에서 발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43년 만에 국가배상 공익소송

“살아남은 자들의 잊혀가는 한 동지이자 선배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다시는 국가 폭력에 국민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김종세(65)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이사가 잊혀가는 임 목사를 다시 소환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유족을 만나 임 목사 명예를 회복시키자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이에 유족은 지난해 12월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아버지가 고문치사로 숨졌다”며 조사를 요구했다.

전국 시민사회단체 대표·원로·목사 등 93명은 지난 11일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순교자 임기윤 목사 국가배상 추진위원회’를 발족했다. 김영주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이사장(목사)과 송기인 신부가 추진위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11일 민주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임기윤 목사 국가배상 추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지난 11일 민주시민단체 대표자들이 ‘임기윤 목사 국가배상 추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순교자 임기윤 국가배상 추진위원회 제공

국가배상청구액은 60억원이다. 국가범죄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을 환기하고 과거 5·18민주화유공자들과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배상이 구금일수 기준으로만 선고돼 실질적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라고 추진위는 밝혔다.

임 목사 국가배상 청구소송은 공익 소송이다.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지만 2천만원의 소송비용과 활동비 1천만원 등 3천만원은 100여명의 추진위원이 부담한다. 추진위원이 10만~100만원씩 내면 배상금에서 원금만 되돌려주는 펀드 형식인데 이미 2천만원을 넘었다. 소송을 대리하는 이상희·양성우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추진위는 임 목사가 43년 전 숨졌던 7월26일 서울에서 임 목사 국가배상 추진 의미와 과정 등을 알리는 발표회를 연다. 가을에는 임 목사 가족이 겪은 피해를 폭로하고 국가폭력 재발방지와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김의기 열사 자형인 박철(69) 목사는 “시민사회진영과 교계에서 임 목사님 기일에 추모식을 연 적이 없을 정도로 잊힌 분으로 만들어 죄송할 따름이다. 국가배상 청구소송과 별도로 추모사업회를 만들고 생전 설교집 등을 발굴해 평전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종세 추진위 집행위원장은 “국가배상액이 결정되면 국가폭력에 졸지에 가장을 잃은 유족이 43년 동안 겪은 온갖 고통을 보상받는 의미도 있지만 5·18 희생자와 세월호·이태원참사 희생자 등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하는 소송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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