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회장이 고 김형률씨 추모비를 닦고 있다.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제공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원자폭탄 피폭후유증을 앓다가 숨진 ‘원폭피해자 2세 환우’들의 합동추모제가 오는 28일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군에서 열린다.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는 16일 “원폭 피해자 2세이면서 반핵평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김형률(1970~2005)씨 18주기를 맞아 28일 오후 2시 경남 합천군 합천읍 합천원폭자료관 광장에서 한국원폭피해자 2세 합동추모제를 봉행한다”고 밝혔다. 환우회는 해마다 고 김형률씨 추모제를 열고 있는데, 올해는 김씨처럼 선천성 피폭후유증을 앓다가 숨진 11명을 포함해 모두 12명의 추모제를 함께 열기로 했다.
‘원폭피해자 2세’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한국인의 자녀이다. 이들은 원자폭탄 투하 이후 태어났기 때문에 직접 피폭되지 않았으나, 많은 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피폭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난 2013년 경남도가 도내 원폭피해자 2세 244명의 건강 상태를 조사해보니, 13.9%(34명)가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조사 대상의 9.1%가 장애인으로 등록해, 전국 장애인 등록률(5.0%)의 2배에 가까웠다.
고 김형률씨도 원폭피해자 2세이다. 김씨의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일본 히로시마에 살다가 1945년 8월6일 원자폭탄에 피폭됐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져서 해방 이후 귀국했다.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씨는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지는 희귀 난치병인 ‘선천성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을 어려서부터 앓았다. 어머니에게서 대물림된 원자폭탄 피폭후유증 때문이었다.
김씨는 2002년 3월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원폭 피폭후유증을 앓는 원폭피해자 2세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를 계기로 원폭 피폭후유증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에 처음 알려지면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을 앓던 원폭피해자 2세들이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김씨는 원폭피해자 2세들의 단체인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며, 원폭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 등 반핵평화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특별법 제정을 보지 못하고 2005년 5월29일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에 의한 폐렴으로 서른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씨와 함께 합동추모제에 오르는 11명은 1945년 해방 이후 태어났으나 젊어서부터 근이양증 등 희귀질환이나 각종 암을 앓다가, 30~60대 나이에 숨졌다. 이들 가운데 1명의 부모는 1945년 8월 원자폭탄 투하 당시 나가사키에서 살았고, 나머지 10명의 부모는 히로시마에 살았다. 이들 가운데 백아무개씨는 근이양증을 앓다가 40대 중반에 숨졌는데, 그의 자녀도 근이양증을 앓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한국인은 7만여명이 피폭돼 4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해방 이후 생존자 3만여명 가운데 2만3천여명이 귀국했는데, 대한적십자사 집계 결과 지난달 말 기준 국내 생존자는 1834명에 불과하다. 생존자 평균 나이는 83.3살에 이르렀다.
고 김형률씨의 노력으로 그의 사후 11년 만인 2016년 5월29일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김씨와 같은 원폭피해자 2세는 특별법 지원을 받지 못한다. 원폭 피폭후유증이 대물림된다는 것이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별법은 원폭이 투하된 때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있었던 사람과 태아로 원폭피해자 범위를 한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피폭후유증으로 추정되는 선천성 질환을 앓는 원폭피해자 2세의 정확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환우회는 2세는 물론 그 자녀인 3세에서도 선천성 피폭후유증이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한정순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회’ 회장은 “원폭피해자 2세 가운데 피폭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현황은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이번에 추모제에 올리는 12명은 환우회가 평소 친분을 통해 자체적으로 파악한 것으로,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올해 추모제를 계기로 원폭피해자 2세가 겪는 고통의 실체가 우리 사회에 제대로 알려져서, 이들의 아픔을 서로 나누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경남 합천군에서 강제징용돼 일본으로 간 사람들은 대부분 히로시마의 군수공장에 투입됐다. 이 때문에 합천군 출신들의 원폭 피해가 컸다. 해방 이후 수천명의 피폭자들이 고향 합천으로 돌아오면서, 합천군은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게 됐다. 고 김형률씨의 부모도 합천군 출신이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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