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창원 전국 민속 소힘겨루기 대회 백두급 결승전에서 싸움소 ‘힘센’이 ‘날센’의 공격을 피하며 역습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힘센’은 경기 시작 6분 만에 ‘날센’을 물리치고 우승했다. 최상원 기자
백두급의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탑’이 준결승전에서 상대 선수 ‘날센’의 날쌘 공격에 제대로 반격 한번 못 해보고 꽁무니를 뺐다. 경기는 심판의 호각 소리가 울리고 불과 15초 만에 끝났다. ‘탑’의 정수리를 찍은 ‘날센’의 왼쪽 뿔에 붉은 피가 묻어 있었다. ‘날센’의 뿔 공격에 충격을 받은 ‘탑’은 결국 3·4위전 출전을 포기했다.
“정말 박진감 넘치는 경기였습니다. 졌지만 최선을 다해서 싸운 탑에게도 힘찬 격려의 박수 보내주세요.” 장내 아나운서가 흥을 돋우자, 관중은 ‘탑’이 경기장을 벗어날 때까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올해 첫 전국 소싸움 대회인 ‘제21회 창원 전국 민속 소힘겨루기 대회’가 지난 16~20일 경남 창원시 북면 특설경기장에서 열렸다.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 2020~2022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중단했다가 5년 만에 다시 열린 대회였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에서 싸움소 135마리가 출전했다. 1560석 규모의 관중석으로도 부족해 700~800명 정도는 경기장 주변에 선 채로 소싸움을 관람했다. 창원시는 대회 기간 3만명 이상이 경기장을 찾은 것으로 추산했다.
몸무게 700㎏ 이하 태백급에서 우승한 ‘흑곰’의 주인 김두만(82)씨는 “50년째 싸움소를 키우고 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자식 같은 소와 함께 사는 것 자체가 좋다. 덕택에 항상 즐겁고 내 건강도 유지한다”고 말했다.
녹색당 동물권위원회와 동물보호단체들이 지난달 13일 국회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소싸움 대회 폐지를 주장했다. 녹색당 제공
전국에서 소싸움 대회를 여는 지역은 대구 달성, 경남 창원·진주·김해·의령·창녕·함안, 경북 청도, 전북 완주·정읍, 충북 보은 등 11곳이다. 이들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소싸움 관련 조례를 갖추고 해마다 대회를 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중단했던 대회가 다시 열리면서 소싸움을 둘러싼 동물학대 논쟁도 다시 불붙었다. 반대론자들은 동물끼리 싸움을 붙이고 이를 즐기는 것은 명백한 학대행위라고 주장한다. 옹호론자들도 할 말은 있다. 좁은 우리 안에서 식용으로 사육되다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도살되는 고기소보다는, 주인들이 애지중지 키우는 싸움소들이 훨씬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올해 전국대회는 이미 대회를 치른 창원에 이어, 4월14~16일 경북 청도, 4월20~24일 경남 의령, 5월4~8일 경남 창녕, 6월8~12일 전북 정읍 등에서 잇따라 열린다. 전국대회와 별도로, 경북 청도군은 지방공기업인 청도공영사업공사를 설립해 소싸움 대회를 상설 개최한다. 올해는 1년 내내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경기가 열린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선 경기마다 1인당 100~10만원의 돈을 걸 수도 있다. 경남 진주에서도 3~9월 매주 토요일에 경기를 연다.
소싸움 대회는 수소 2마리가 일대일로 겨루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소싸움은 소가 중요한 경작 수단이던 농경문화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소싸움을 즐겼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지름 30m의 원형 경기장에 50~60㎝ 두께로 모래흙을 깔고 진행하는 현행 경기 방식은 1970년대 초반 확립됐다.
제21회 창원 전국 민속 소힘겨루기 대회 백두급 결승전에서 싸움소 ‘힘센’(왼쪽)과 ‘날센’이 대가리를 맞대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대회는 소의 몸무게에 따라 대백두(900㎏ 초과)·소백두(800㎏ 초과~900㎏)·대한강(750㎏ 초과~800㎏)·소한강(700㎏ 초과~750㎏)·대태백(650㎏ 초과~700㎏)·소태백(650㎏ 이하) 6개 체급으로 치르거나, 백두급·한강급·태백급 3개 체급으로 나눠 진행한다. 소 2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힘껏 밀어붙이는 ‘밀치기’가 기본 방식인데, 머리를 세게 부딪치는 ‘머리치기’, 빈틈을 노려 순간적으로 상대 목을 들이받는 ‘목치기’, 뿔을 걸어서 누르거나 들어 올리는 ‘뿔걸이’ 등 다양한 기술이 사용된다. 경기 도중 한마리가 뒤로 물러서거나 달아나면 경기는 끝난다. 경기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채 10초도 되지 않아 끝날 수도 있고, 2마리가 모두 체력이 소진될 때까지 수십분간 경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싸움소가 되는 길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대를 이어서 싸움소가 되는 것인데, 5대째 싸움소를 배출한 혈통도 있다. 다른 하나는 송아지일 때 싸움소로 선발되는 것이다. 뿔과 뿔 사이가 좁고, 눈빛이 날카로우며, 목 주변 근육이 발달하고, 꼬리가 긴 송아지를 싸움소로 고른다고 한다. 경마 경기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말이나 외국 혈통 말도 출전하지만, 소싸움 경기에는 순수한 한우만 출전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싸움소는 2천여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제21회 창원 전국 민속 소힘겨루기 대회에 나온 싸움소들이 자신의 출전 시간을 기다리며 경기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싸움소는 싸움 기술도 배우지만, 근력과 지구력 증강 훈련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 타이어를 끌고 달리거나,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리는 훈련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싸움소는 4살 때부터 15살 때까지 경기에 나가는데, 7~8살 때 전성기를 맞는다. 높은 승률을 기록하는 싸움소는 연간 2천만원 이상 상금을 벌어들인다. 이 때문에 우량 싸움소는 1억5천만원이 넘는 돈에 거래되기도 한다.
식용소는 태어나서 3년 정도 되면 도축된다. 덩치가 다 컸는데, 계속 키우면 사육비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또 육질을 연하게 하려고 대부분의 수소는 거세한다. 그러나 싸움소는 은퇴 이후 쉬다가 늙어 죽기 때문에 20년 가까이 산다.
그렇지만 온순한 소를 훈련시켜서 싸움으로 내몬다는 점 때문에 소싸움 대회에는 동물학대라는 비판이 줄곧 따라다닌다. 그러나 소싸움 대회는 합법적으로 열린다. 동물보호법이 소싸움을 동물학대 금지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민속 소싸움협회’도 동물학대 비판을 피하기 위해 협회 이름을 지난해 ‘대한 민속 소힘겨루기협회’로, 소싸움 대회는 ‘소힘겨루기 대회’로 명칭을 바꿨다. 소뿔을 뾰족하게 다듬는 행위를 금지하고, 한마리가 경쟁을 포기하면 즉시 경기를 중단하도록 했다. 경기장에는 수의사를 배치하는 등 동물학대 방지 규정도 강화했다. 대회에 출전한 싸움소는 체력 회복을 위해 3개월 이상 쉬어야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제21회 창원 전국 민속 소힘겨루기 대회 한강급에서 우승한 싸움소 ‘화랑’의 주인이 소 등에 앉아서 경기장을 돌며 관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최상원 기자
박영진 대한 민속 소힘겨루기협회 창원지회장은 “육우 등 식용소는 좁은 우리에 갇혀서 사료로 살만 찌우다가 채 3년도 살지 못하고 도축당한다. 그거야말로 동물학대가 아니냐”고 했다. 박성권 협회 총괄본부장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힘겨루기 대회를 보존하기 위해 무형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려고 한다. 올해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관련 책자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물권 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는 소싸움을 ‘국가가 허락한 동물학대’로 규정한다. 2019년부터는 지자체가 소싸움 대회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예산깎겠소’ 운동을 펼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싸움소를 자식 돌보듯 애지중지 키운다는데, 세상 어느 부모도 사랑하는 자식을 싸움판에 내몰지 않는다. 소싸움이 무형문화재로 등록된다면 국제적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색당 동물권위원회는 지난달 13일 국회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동물보호법 제8조 ‘소싸움 예외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이들은 “전통이라는 이유로 소에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이제는 멈춰야 한다. 소싸움을 동물학대로 인정 않는 동물보호법 8조 예외 조항을 당장 없애기 어렵다면 일몰제를 도입해 폐지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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