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가 23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아사히글라스와 하청업체에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를 규탄했다. 김규현 기자
“이 나라 사법부에 공정과 상식이 있긴 한가요? 9년 투쟁하며 쌓아온 복직의 희망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23일 오전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한겨레>와 만난 오수일(51)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15년 구미공단 일본 유리제조업체인 아사히글라스(AGC)화인테크노코리아 사내하청 업체에서 일하다 해고됐다. 9년째 복직 투쟁을 이어오며 회사를 상대로 벌인 소송에서 매번 이겨왔지만, 최근 소송에서 재판 결과가 뒤집혔다.
지난 17일 대구지법 형사4부(재판장 이영화)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아사히글라스와 하청업체의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원청의 상당한 지휘·명령을 받으며 파견법에서 정한 근로자파견관계를 형성하였다고 보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했다며 즉각 상고의사를 밝혔다.
차헌호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지회장은 “판사가 쓴 20쪽 남짓 판결문에 우리의 삶이 걸려 있다. 앞선 재판 결과와 1만장이 넘는 증거자료를 무시하고 판사가 원하는 것만 취사선택했다. 마치 (회사에) 무죄를 주려고 쓴 판결문 같다”고 말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파견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원청 대표에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하청 대표에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법인에는 각각 벌금 1500만원과 300만원을 선고했다. 해고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소송(민사)에서는 승소했다. 1·2심 재판부는 원청이 파견법을 위반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했기 때문에 해고된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편 금속노조는 이번 재판 결과가 앞으로 다른 사업장의 소송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한다. 금속노조는 이날 오전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도 불법파견 소송은 기약 없는 판결 지연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산다. 이번 판결은 산업현장에서 20년 넘게 만연하게 퍼진 불법파견을 옹호하고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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