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한국예탁결제원 차장이 아동보호시설에서 나온 자립준비청년이 사용할 방을 정리정돈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대학생 김하나(가명·21)씨는 성장기를 ‘그룹홈’에서 보냈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함께 지내는 집이다. 성년이 되면 나와야 하는 규정 때문에 19살 때 그룹홈을 나왔지만, 부산시가 지원한 자립정착금 1천만원으로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한국예탁결제원(예탁원)의 공유사택 입주자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지난해 5월 입주했다. 김씨는 “월세 부담이 없는데다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에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김씨와 같은 시기에 입주한 박경주(가명·23)씨 처지도 비슷했다. 법적 보호 기간이 끝난 뒤 매달 나오는 40만원의 자립수당에 고모가 준 용돈을 더해 혼자 사는 원룸의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했지만, 5년의 수당 지급 기간이 종료되면 이마저 어려워질 상황에 놓였다. 그러다 인터넷 카페에서 공유사택 입주 공고를 보고 지원해 새 보금자리를 찾게 됐다.
아동보호시설에서 나온 자립준비청년이 입주할 예정인 한국예탁결제원 공유사택. 방 안에 세탁기 등 살림 도구가 있다. 김광수 기자
공유사택은 예탁원이 마련한 직원용 숙소다. 2014년 서울에서 부산으로 예탁원이 옮겨 오면서 홀로 이주한 직원들을 위해 오피스텔 116실을 사들였다. 지역상생방안을 찾던 예탁원은 지난해 내부 논의를 거쳐 아동보호시설을 나와 자립을 준비하는 지역 청년들한테 15실을 내주기로 하고, 입주자를 모았다. 16일 현재 10명이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데, 다음달까지 5명이 추가로 더 입주할 예정이다.
사택 일부를 지역 청년 등에게 제공하는 공공기관은 몇군데 있지만, 예탁원 공유사택은 공공기관 직원들과 사회취약계층이 공존하는 드문 사례다. 공유사택 사업은 부산시와 부산시보호아동자립지원센터, 예탁원이 지난해 4월 부산 지역청년 주거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성사됐다. 이윤재 부산시 청년산학국장은 “법적으로 보호의 그늘에서 벗어난 자립준비청년은 아직 돌봄이 필요한 계층이다. 공유사택은 일시적이기는 하나 이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예탁원 공유사택의 최대 장점은 입주한 자립준비청년들의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탁원이 오피스텔 건물 전체를 사들인 것이 아니어서 직원과 자립준비청년뿐 아니라 일반 입주자들이 섞여 생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역세권이다. 부산도시철도 2·3호선이 만나는 수영역에서 걸어서 2~3분밖에 걸리지 않고 주변에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다.
아동보호시설에서 나온 자립준비청년이 입주할 예정인 한국예탁결제원 공유사택엔 붙박이장과 비데 등이 잘 구비돼 있다. 김광수 기자
입주한 자립준비청년들은 50만~60만원 하는 월세 없이 매달 10만원 안팎의 관리비만 내면 된다. 예치금 600만원을 내면 2년 동안 살 수 있고, 필요하면 2년 더 연장할 수 있다. 예치금은 나갈 때 돌려준다. 김민정 예탁원 차장은 “예치금을 받는 이유는 자립정착금을 경제 개념이 정립될 때까지 잘 보관해주기 위한 의도”라며 “필요하면 심리상담전문가와 연간 16차례까지 상담을 할 수 있고 경제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둘러본 5층 예탁원 공유사택엔 시스템에어컨·세탁기·전자레인지 등 웬만한 살림 도구가 다 갖춰져 있었다. 채광과 통풍도 양호했다. 침대 옆에는 예탁원이 입주자에게 선물하는 이불과 운동용품이 포장된 상태로 놓여 있었다. 강구현 예탁원 경영본부장은 “직원 사택과 동일한 살림살이를 제공하고 있다. 효과가 좋으면 공유사택 확장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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