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구 겨울 철새들의 모습. 습지와새들의친구 제공
지난 27일 오후 찾아간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 남단 습지에는 철새들이 무리 지어 쉬고 있었다. 청둥오리 20여마리가 날아올랐다. 한쪽에선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보호종인 고니류 100여마리가 강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고 있었다. 고니 떼 일부는 먹잇감을 찾아 얕은 물 위를 분주히 오갔고, 다른 고니들은 날개깃에 머리를 묻고 쉬고 있었다. 이곳에선 해마다 겨울이면 200마리가 넘는 고니 떼가 관찰된다.
낙동강 하구 겨울 철새들의 모습. 습지와새들의친구 제공
하지만 이곳에서 고니와 청둥오리를 언제까지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부산시가 이곳을 관통해 강서구 식만동과 사상구 삼락동을 잇는 길이 8.24㎞의 왕복 4차로 대저대교를 지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미 낙동강 하구를 찾는 철새 수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조사한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를 보면, 2006년 1월 낙동강 하구 조류 개체 수는 6만7천여마리였는데, 2020년 1월 4만800여마리로 감소했다. 박중록 습지와새들의친구 운영위원장은 “각종 개발 사업으로 낙동강 하구 곳곳으로 철새 서식처가 잘게 쪼개졌는데, 이곳은 얼마 남지 않은 핵심 철새 서식처다. 그런데 흑기러기, 검둥오리사촌 등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고 쇠제비갈매기, 덤불해오라기 등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고니류도 마찬가지다. 철새 서식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낙동강 하구 겨울 철새들의 모습. 습지와새들의친구 제공
부산시는 지난 10일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낙동강유역환경청(환경청)에 제출했다. 2월 환경청으로부터 초안에 대해 회신을 받으면, 절차에 따라 검토한 뒤 환경영향평가 본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문제는 부산시가 환경청·환경단체와 3자 협약을 맺어 겨울 철새 공동조사를 하고 계획한 4개 대안 노선을 모두 폐기하고, 기존의 노선으로 초안을 제출했다는 것이다.
앞서 부산시는 2018년 9월 철새 서식처를 관통하는 노선의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를 환경청에 제출했는데, 환경단체가 생태계 부문 조사가 거짓·부실로 이뤄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 수사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자, 2020년 6월 환경청은 시의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했다.
이후 부산시는 2020년 12월 환경청·환경단체와 3자 협약을 맺어 낙동강 하구 겨울 철새 공동조사에 나섰고, 2021년 6월 환경청과 환경단체는 철새 서식처를 우회하는 4개 ‘대안 노선’을 마련해 시에 통보했다. 하지만 시는 처음부터 대안 노선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태도였다. 이후 환경단체와 여러차례 협의에 나섰지만 견해차를 끝내 좁히지 못했다.
낙동강 하구 겨울 철새들의 모습. 김영동 기자
부산시가 ‘대안 노선 불가’를 고집하며 내세우는 논리는 “대안 노선으로는 강서구 일대의 심각한 차량정체가 해소되지 않아 대저대교 건설에 따른 도로망 구축의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차례 진행한 시민 공청회와 주민 설명회, 전문가 토론회에서도 “경제적 타당성 등을 다각도로 고려할 때 원안 노선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점도 부산시는 강조한다. 시 도로계획과 관계자는 “강서·사상구 주민들도 대안 노선으로는 ‘교통 여건 개선이 안 된다’며 원안 노선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다수”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를 근거로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올해 안에 대저대교 착공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환경단체는 부산시의 방침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물론 이들도 주민의 생활 편의를 위해 차량정체 해소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대안 노선을 비롯해 △낙동강 다리 10개의 도로 확장과 연결로 증축 △을숙도대교 등 일부 유료 다리의 무료화 △신호체계 정비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증편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환경단체들은 대저대교가 원안대로 추진될 경우, 1만㏊에 이르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가 토목 사업장으로 바뀌고 만다고 우려한다. 대저대교 원안 추진과 관련한 주민설명회는 다음달 초 개최된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