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 교육생 최은형씨가 자신이 재배한 방울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남 창녕에 귀농해서 2015년부터 남편과 함께 마늘·양파 농사를 지었는데, 해마다 기후변화 같은 환경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노지에서 관행농업을 계속하다가는 망하고 끝나겠다 싶더군요. 그래서 환경 영향을 받지 않는 스마트팜 농법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최은형(40)씨는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 최고령 교육생이다. 지난 2021년 9월부터 이곳에서 첨단 농법을 배우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40m 길이의 이랑 8개에서 방울토마토를 생산하고 있는데, 전량이 경남 밀양에 학교급식용으로 납품된다. 다가오는 여름 교육을 마치면, 3년 동안 혁신밸리에서 제공하는 임대형 스마트팜에서 창업을 준비하려고 한다. 그는 “스마트팜은 시설을 갖추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관행농업보다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30~50% 정도 더 수확할 수 있다. 7년만 고생하면 초기 투자에 들어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고 했다.
최씨의 동기생인 변진영(31)씨는 자신이 재배한 레드칸 토마토를 지난해 11월부터 수확해 농산물 경매시장에 내놓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서 살던 변씨는 “경남 남해로 귀농한 형에게 가서 농사를 배웠는데, 농사 경험도 없고 관련 지식도 없어 너무 힘들었다. 이곳엔 첨단 농법을 체계적으로 제대로 배우려고 왔다”고 말했다.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 교육생 변진영씨가 자신이 재배한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지난달 14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밀양강 인근 22만여㎡ 들판에 문을 열었다.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2018년 농업위기 극복과 식량안보를 위해 스마트팜 확산 방안을 발표했다. 농림부는 스마트팜 확산 거점으로 경북 상주, 전남 고흥, 전북 김제, 경남 밀양 4곳을 선정하고 이곳에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조성했다.
스마트팜은 자동화 기술과 정보통신 기술을 농업에 접목해, 최적의 생육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농산물의 생산성과 품질을 향상시키는 농장이다. 농업인이 스마트팜을 도입하면 노동력 절감, 소득 증대, 노동시간 감소로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국내 스마트팜 보급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농촌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농업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스마트팜이 우리 농업의 미래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다.
문제는 비용이다. 시설을 갖추기 위한 초기 투자 비용이 일반 비닐온실의 2배 수준이다. 그래서 현재 스마트팜을 운영하는 농민 대부분은 초기 투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빚을 진다. 게다가 첨단 장비를 운영하려면 지속적인 기술 지원도 필수다. 의욕만 있다고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농업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 갈수록 농업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어서 여러 현실적 문제가 있더라도 스마트팜 확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진다.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스마트온실의 다양한 환경 요소를 농작물 생장에 적합하도록 실시간 관리한다. 최상원 기자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10만4천㎡ 규모의 스마트온실 12개 동과 지원센터, 기숙사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다. 혁신밸리를 찾은 지난달 19일 스마트온실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에서 땀이 났다. 실내 온도와 습도를 농작물 생장에 가장 적합하도록 맞춰놓았기 때문이다. 당시 밀양 지역 기온은 영하 10도였다. 6.3m 높이의 온실 벽면은 단열을 위해 투명한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MMA) 재질의 이중 구조로 되어 있고, 천장은 온실 전체에 햇볕을 고루 보낼 수 있도록 저철분 산란광 유리로 덮여 있었다. 교육생들은 대부분 반팔 옷을 입고 있었다.
지원센터에는 스마트팜 빅데이터센터가 있다. 빅데이터센터는 스마트팜의 온도, 습도, 일사량, 이산화탄소 농도 등을 10분 단위로 자동측정한다. 스마트팜에서 재배하는 농작물의 생육 상태는 일주일 단위로 수동 측정한다. 전국 4곳의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 측정한 자료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 취합돼, 스마트팜 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빅데이터로 활용된다.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선 해마다 18~39살 청년 52명이 들어와 입문교육 2개월, 교육형 실습 6개월, 경영형 실습 12개월 등 모두 20개월 과정의 교육을 받는다. 교육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모든 비용은 국비로 지원된다. 20개월 교육을 마친 수료생 가운데 15명에게는 3년 동안 농사지을 수 있게 스마트팜 시설도 빌려준다.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 교육생 정재벌씨가 자신이 재배하는 딸기의 생장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에는 현재 3기 교육생까지 들어와 있다. 이들 52명의 평균 나이는 28.5살. 남자가 45명, 여자가 7명이다. 이 가운데 42명이 대졸 학력자인데, 농업을 전공한 사람은 11명에 불과하다. 농사를 처음 지어보는 사람도 11명이나 된다.
입문교육 2개월 동안은 스마트팜 이론, 농사창업 설계, 마케팅 기법, 스마트기기 운용 방법 등을 배운다. 이어지는 교육형 실습 6개월 동안은 각자 32~40m 길이의 이랑 1개씩을 맡아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농업 실습을 한다. 이곳에선 딸기, 파프리카, 토마토 3개 작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재배한다. 마지막 경영형 실습 12개월 동안은 각자 이랑을 7~8개씩 할당받아 농사를 짓는데, 각자가 재배한 수확물을 판매해서 개인 소득도 올린다.
임대형 스마트팜에서는 각자 70m 길이의 이랑 12개나 24개를 맡아 농사를 짓는다. 농산물 판매 수입은 당연히 교육생 몫이지만, 이곳에선 시설 임대료와 각종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교육생들은 이 기간 동안 첨단 농사법을 익히며, 농사창업 준비를 하고, 창업에 필요한 종잣돈을 마련한다.
20개월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임대형 스마트팜에서 딸기를 재배하는 김민규(37)씨는 최상품 딸기를 생산해 국외로 수출하는 게 목표다. 김씨는 “창업을 위한 종잣돈으로 최소 1억원 정도는 이곳에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그가 더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창업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김씨는 “시설 투자비를 줄일 수 있는 데까지 줄여야 한다. 혁신밸리 시설에서 줄이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경영형 실습 과정을 밟고 있는 정재벌(31)씨는 “스마트팜은 소규모 다품종 생산을 하기에 좋다. 딸기 재배를 위한 스마트팜의 시설 비용은 기존 비닐온실이나 유리온실에 견줘 크게 비싸지 않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경남 스마트팜 혁신밸리’를 방문한 투엉하이 ‘남베트남 농업과학원’ 부원장(오른쪽)이 혁신밸리 교육생들이 생산한 딸기를 맛보고, 맛있다며 칭찬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요즘 혁신밸리에는 첨단 스마트팜 시설을 살펴보려는 방문객들이 줄을 잇는다. 지난달 19일 이곳을 방문한 투엉하이 ‘남베트남 농업과학원’ 부원장은 교육생들이 생산한 딸기를 맛보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혁신밸리를 둘러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이곳에선 온도를 높여서 농작물을 생산하는데, 베트남에선 온도를 낮춰서 농작물을 생산하는 스마트팜을 개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혁신밸리를 운영하는 경상남도 농업인력자원관리원의 김서곤 원장은 “현재 우리 농촌은 공동화·고령화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농촌을 되살리려면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어야 하고, 그걸 위해서는 관행농업을 디지털농업, 스마트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스마트팜 시설을 이용해 농사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에게 첨단 농업 기술을 가르치고, 창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전국 각지에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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