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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창골에 울려 퍼진 곡소리…“떳떳한 우리 아부지 맨들어주소”

등록 2022-10-05 16:22수정 2022-10-05 19:41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지난 1일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에 마련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열린 10월항쟁 76주기 합동위령제에서 분향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이 지난 1일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에 마련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열린 10월항쟁 76주기 합동위령제에서 분향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배고파서 못 살겠다’ 외쳤다가 굴비처럼 묶여와 이 골짝에서 학살되니 핏물은 냇물 되고 육신은 짐승밥이 되었구나. 억울하고 절통하다.”

지난 1일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에 있는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10월항쟁 76주기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강호재(82)씨가 축문을 읽어내려가자 참석자들은 눈물을 훔쳤다. 강씨의 아버지 강신중(1914∼?)은 한국전쟁 전 가족들과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에 대한 강씨의 마지막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거슬러간다. 아버지는 사상 문제로 여러 차례 경찰에 끌려갔고, 동네부자였던 6촌 형님네 집에서 그때마다 돈을 써서 아버지를 데리고 나왔다. 강씨는 20여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숨졌다는 소식을 6촌 형을 통해 처음 들었다고 했다.

“6촌 형님이 ‘너거 아부지는 대구경찰서에 계시다가 가창골 아니면 청도 곰티재로 끌려 가셨을끼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 8년 전 방송에서 경북지역 민간인 학살 문제가 나오는 걸 보고 아부지도 10월항쟁에 연루돼 끌려가셨구나 짐작했지. 나도 여든 넘어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아부지 일을 해결하고 가야 안 되것나.”

지난 1일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에 마련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열린 10월항쟁 76주기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들이 합동제배를 올렸다. 김규현 기자
지난 1일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에 마련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서 열린 10월항쟁 76주기 합동위령제에서 유족들이 합동제배를 올렸다. 김규현 기자
10월항쟁 위령탑에는 희생자 573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대구 10월항쟁은 해방 뒤 일어난 첫 민중항쟁으로 꼽힌다. 1946년 9월 전국적 규모의 총파업 이후 10월1일 대구에서 경찰 발포로 노동자 등 2명이 숨졌다. 민심이 들끓었다. 미군정의 계엄령 선포로 대구와 경북에서만 7500여명이 검거됐다. 이후 1950년 좌익전력자 예비검속 과정에서 10월항쟁 참여자, 남로당 가입자는 물론 사건과 상관없는 민간인까지 희생됐다.

이창혁(78)씨가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 모실 자신의 아버지 이갑식(1920∼1949)의 위패를 가르키고 있다. 김규현 기자
이창혁(78)씨가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 모실 자신의 아버지 이갑식(1920∼1949)의 위패를 가르키고 있다. 김규현 기자
이창혁(78)씨는 올해 처음 위령제에 참석해 아버지의 위패를 모셨다. 그는 아버지가 빨갱이로 몰려 억울하게 희생된 줄로만 알았다. 그가 18살이던 해 어머니께서 아버지가 생전 쓰던 가방을 보여줬다. 가방에서 나온 신문기사에는 아버지 이갑식(1920∼1949)이 미군정 제3사단고등군법회의에서 이적행위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1948년 총살형이 집행됐다고 씌어 있었다. 그는 지난해 가창골에 위령탑이 세워졌다는 뉴스를 보고, 아버지가 10월항쟁과 연관돼 희생됐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10·1사건’ 카면 그때 대구서 사람 마이 죽었다 이래만 알고 있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카이. 아부지가 처형된 연도를 보이 그 사건 연장선이라. 뺄개이 자식이라칼까봐 보상 신청할 생각도 몬하고 평생을 숨어 살았어. 국가가 사람을 잡아다가 몬 씨는(못 쓰는) 사람으로 맨들어 놨잖아. 떳떳한 우리 아부지 맨들어줘야지.”

그는 최근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상조사를 신청한 뒤, 국가를 상대로 재심 청구도 준비하고 있다.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에 마련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 걸린 백기완 선생의 추모시. 김규현 기자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골에 마련된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에 걸린 백기완 선생의 추모시. 김규현 기자
10월항쟁유족회는 유족 대부분이 70∼80대 고령인 만큼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2010년 1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희생자 60명의 신원을 확인하며, 대구·칠곡·영천·경주 지역 일부만 조사한 결과인만큼 실제 희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은 “유족들이 연세가 많아 시간이 흐를수록 (10월항쟁은) 우리의 기억에서 멀어질 것이다. 10월항쟁이 유족들만의 문제를 넘어 대구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되길 소망한다. 정확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유해 발굴 및 추모공원 조성, 미신고자가 신고할 수 있는 창구 개설과 국가의 책임 있는 배상과 보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령제에 참석한 정근식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은 “이 위령탑에는 573명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아직도 이름을 알 수 없는 희생자들이 많다. 이들을 온전하게 파악하는 일은 2기 위원회의 몫이다.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159명이 조사를 접수했다. 가창골 유해 발굴도 결정해 수행 기관을 선정 중이다.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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