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문전지하차도 앞 횡단보도 모습. 김영동 기자
“이게 무슨 놈의 도로가? 와 이리 해놨노!”
27일 오후 부산 남구 문현동 문전지하차도 출구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김아무개(57)씨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녹색 보행 신호에 따라 길을 건너는데 지하차도를 지나 달려오던 차량이 횡단보도 바로 앞에서 급하게 멈춰 섰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하차도 오르막 구간에선 차들이 힘을 받으려고 가속을 하는데, 출구 바로 앞에 횡단보도를 떡하니 그어놓으면 대체 어떡하라는 거냐”며 “운전자가 잠깐만 한눈팔아도 큰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라고 화를 냈다.
운전자들도 사고 위험성이 높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출퇴근길에 이 지하차도를 이용한다는 권아무개(51·동래구 온천동)씨는 “지하차도 안의 도로가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져 있어 가시거리가 길지 않다. 게다가 지하차도를 나오자마자 횡단보도가 있어, 처음 이용하는 운전자는 사고 위험이 크다”고 했다.
이 지하차도는 상습정체구간인 문전교차로(부산진구 전포동~남구 문현동)의 혼잡도를 낮추려고 국비와 시비 282억원을 들여 지난 7월30일 개통했다. 전포동 방향에서 진입해 문현동으로 빠져나가는 436m 길이의 한 방향 2차선 지하차도다.
문제는 도로가 직선이 아닌데다, 지하차도 출구 바로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 운전자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보행자와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부산시는 “지하를 통과하는 도시철도와 지상의 동서고가도로 지지 기둥 때문에 지하차도를 곡선으로 놓을 수밖에 없었다. 횡단보도를 출구 쪽에 가깝게 붙인 것도 주민들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실제 부산시는 애초 지하차도를 개통하면서 횡단보도를 출구에서 100m 떨어진 곳으로 옮겨 설치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주민들이 인근 상권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이용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위치를 고집했다. 앞서 주민들은 2019년 11월에도 국민권익위원회에 횡단보도 이설 반대 민원을 냈다. 권익위는 주민 의견을 반영하라며 부산경찰청과 부산시 등에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를 열 것을 권고했다.
부산 문전지하차도 앞 횡단보도 모습. 김영동 기자
부산시와 경찰은 주민설명회와 현장조사를 거쳐 지난해 10월 지금 위치에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안을 상정했지만, 심의위는 사고 우려가 크다며 보류했다. 하지만 한달 뒤 재심의에서 주민 의견을 반영해 지하차도 내부에 속도 단속 카메라, 투광기, 점멸신호기, 과속방지시설 등 안전장치를 충분히 설치한다는 조건으로 지금 위치에 횡단보도를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내렸다.
부산시 도로계획과 관계자는 “사고 위험 우려를 잘 알고 있어 계속 모니터링 중이다. (주민 등의 거센 반발로) 횡단보도를 옮겨서 재설치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는 “개선안 마련을 위해 부산시, 경찰청, 주민 대표단과 계속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