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저녁 태풍 힌남노의 폭우로 잠긴 경북 포항시 남구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소방·군 관계자들이 실종된 주민 중 의식 없는 상태의 주민 3명을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엔 싯누런 물만이 출렁거렸다. 6일 태풍 힌남노가 몰고온 집중호우로 인접한 하천이 범람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지하주차장에 갇힌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ㅇ아파트에선, 배수 펌프가 쉴새 없이 가동됐다. 구조등이 어스름을 가르던 저녁 8시15분께, 첫 생존자 전아무개(남·39)씨가 구조됐다. 기적이었다.
천장이 울퉁불퉁해 물이 차지 못한 공간에서 부유물에 의지한 채 한나절을 물과 싸워 버틴 그는 소방당국에 실종 신고가 접수됐던 7명 가운데 1명이었다. 그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곧 또다른 생존자도 나왔다. 전씨 구조 이후 1시간30분여 뒤인 밤 9시 41분께, 실종 신고가 접수됐던 김아무개(여·52)씨가 추가로 구조됐다. 전씨와 마찬가지로 천장의 공기가 남아있던 공간에서 배관을 잡은 채 생존할 수 있었다. 구조된 이들은 모두 의식이 있었으나, 저체온증과 탈진으로 병원에 후송됐다.
제11호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6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침수된 가운데 소방·군 관계자들이 실종된 주민을 구조하고 있다. 매일신문 제공
하지만 한밤의 기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이어진 수색 과정에서, 새벽 3시 기준 애초 실종 신고에 포함되지 않았던 이들이 의식이 없는 채 발견됐다. 애초 7명이 실종된 것으로 추정됐으나 더 많은 주민이 지하 주차장에 갇혔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침수된 지하 주차장은 길이 150m, 너비 35m, 높이 3.5m 규모다.
실종 주민들은 6일 새벽 6시30분께 지하 주차장 내 차량을 이동 조치하라는 관리사무실 안내방송 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가 물이 거세게 들어차면서 실종된 것으로 보인다고 소방당국은 밝혔다.
사고가 일어난 6일 이른 아침, 포항시 인덕동 일대에는 시간당 100㎜에 가까운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태풍 힌남노의 접근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 전날 저녁 7시부터 누적된 강수량이 369㎜에 달했고, 초속 10m 안팎의 북서풍이 시가지를 휩쓸었다. 포항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형산강에는 홍수 경보가 내려졌고, 지하주차장 사고가 난 인덕동과 오천읍을 따라 흐르는 냉천도 이미 몇 군데가 범람한 상태였다. 1995~1996년에 완공된 이 아파트에는 1단지 367가구, 2단지 479가구가 입주해 있는데,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아파트인 만큼 주차장 입구엔 차수벽이 설치돼 있지 않았고, 배수시설도 새로 지은 아파트들에 견줘 취약했다. 주민들이 차를 빼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향했을 무렵, 범람한 하천물이 눈깜짝할 새 지하주차장으로 밀려들어왔다. 한 아파트 주민은 “처음 (관리사무실 안내방송을) 방송할 때는 단지 안에 물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다. 순식간에 물이 (둑을) 넘어와 허벅지까지 물이 찼다”고 말했다.
한편 지하 주차장 사고는 인근 포항시 남구 오천읍의 ㅅ아파트에서도 있었다. 소방당국은 이 아파트에 사는 66살 여성이 오전 9시40분께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을 이동하기 위해 나간 뒤 연락이 끊겼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고 배수·수색 작업에 나섰으나, 실종 6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이정하 김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