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민선 8대 부산시의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고 있다. 김광수 기자
#1. 지난 5월27일 김삼수 부산시의원은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을 선별하는 시설을 부산시가 직접 운영하게 하는 ‘부산시 재활용품 선별장 관리 및 운영 조례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6월14일 도시환경위원회는 수정 가결했고 같은 달 21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부산시는 지난달 5일 재의결을 요구했고 다음날인 6일 부산시의회의 재의결 없이 조례안은 폐기됐다.
#2. 이태성 의원 등 서울시의원 10명은 5월25일 서울시가 출자·출연한 기관의 이사가 이사회에 부의된 안건을 심의·의결하고, 출자·출연기관의 업무 집행에 대한 감시를 위해 자료 요구와 감사 요청 등을 할 수 있게 하는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제출했다. 6월14일 기획경제위원회를 통과한 조례안은 같은 달 21일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같은 달 24일 서울시는 재의결을 요구했으나 시의회는 열리지 않았고 지난달 1일 조례안은 폐기됐다.
<한겨레>가 2018년 7월1일부터 지난 6월30일까지 전국 17개 시·도의회에서 제정한 조례들 가운데 광역자치단체가 재의결을 요구했으나 시·도의회에서 재심의가 이뤄지지 않아 자동 폐기된 조례를 조사해 보니, 부산시가 2건, 서울시가 3건이었다. 이 5건은 새 의회 임기가 시작되면서 폐기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산시 재활용품 선별장 관리 및 운영 조례안’과 폐기물 처리시설 주변 주민들에게 지원하는 기금을 부산시가 주민에게 직접 지급하는 것을 의무화한 ‘부산시 폐기물관리 등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은 지난달 6일 폐기됐다.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과 서울시가 출자·출연한 기관의 임원 보수를 서울시 생활임금의 6배 이내로 제한하는 ‘서울시 공공기관 임원 최고임금에 관한 조례안’, 국제영화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서울시 국제영화제 지원 조례안’은 지난달 1일 폐기됐다.
조례 폐기가 가능했던 것은 현행 지방자치법 규정 때문이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가 통과시킨 조례에 대해 집행부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조례안을 통보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재의결을 요구할 수 있는데, 그사이 지방의원들의 임기가 끝나면 조례는 자동 폐기된다.
부산시는 법의 이런 빈틈을 활용했다. 부산시는 ‘재활용품 선별장 관리 및 운영 조례안’과 ‘폐기물관리 등에 관한 조례 개정안’이 6월21일 부산시의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자 시의회 임기(6월30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지난달 5일 재의결 요구서를 부산시의회에 보냈다. 조례안이 통과된 지 14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재의결 요구시한(지난달 11일)을 지켰으나 8대 부산시의원들의 임기가 끝난 뒤여서 조례안은 지난달 6일 자동 폐기됐다.
서울시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6월21일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조례 개정안’ 등 조례 3건이 서울시의회 본의회를 통과하자 사흘 뒤인 24일 재의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10대 서울시의원들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본회의는 다시 열리지 못했다. 서울시의 재의결 요구 뒤 엿새 만에 본회의를 다시 소집하기엔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결국 11대 서울시의회가 지난달 1일 개원하면서 조례 3건은 자동 폐기됐다.
시민단체들은 서울시와 부산시의 이런 사례를 다른 시·도가 따라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의회 임기 종료 시점이 임박해 제정한 조례가 집행부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다음 의회 개원 직전이나 직후에 재의결을 요구해 얼마든지 자동폐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집행부가 임기 말 시도의회가 제정한 조례의 재의결을 요구해 자동폐기시키는 것은 시민 대의기관의 권능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지방자치법을 고쳐 제도적 빈틈을 메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물론 시민 권익 증진과 지방권력 감시를 위해 필요한 조례라면, 의회가 집행부의 재의결 요구시한(조례 통보일로부터 20일)을 고려해 입법 일정을 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집행부의 반대가 예상되는 조례 제정을 굳이 임기 말까지 미룰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김광수 김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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