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의 수위가 민물(강)의 수위보다 높아지는 대조기에 낙동강 하굿둑 수문을 통해 바닷물(해수)이 낙동강 하류로 유입되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 제공
“10년 농사지었지만 소금 피해 봤다는 말은 한번도 못 들었는 기라.”
지난 5일 낙동강 하굿둑에서 15㎞ 떨어진 지점에 있는 대저수문 근처에서 만난 농민 제상술(82)씨는 “바닷물이 올라와서 피해가 있었다면 다들 가만히 있었겠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2019년부터 낙동강 하굿둑 수문 개방이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별다른 변화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수문 개방에 따라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와 농작물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은 기우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낙동강 하굿둑이 만들어진 건 1987년으로 거슬러간다. 부산과 울산, 경남권의 생활·공업·농업용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목적이었다. 하굿둑을 만들며 수문 10개(좌안)를 설치한 데 이어 2013년에 추가로 수문 5개(우안)를 설치했다. 수문은 민물(강물)을 바다 쪽으로 흘려보낼 때만 개방했다. 하굿둑 설치와 수문 조정으로 각종 용수 공급은 원활하게 이뤄졌지만 생태계 변화는 피하지 못했다. 당장 민물장어와 재첩이 사라졌다. 이런 생물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서식하는 종이다.
지난 5일 낙동강 하굿둑 상류 15㎞에 있는 대저수문에서 바라본 서낙동강. 대저수문을 통해 낙동강 하류 본류가 유입되는데 본류가 녹색이어서 서낙동강 전체가 녹색이다. 김광수 기자
달라진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려는 움직임은 2013년부터 시작됐다. 이른바 낙동강 하류 ‘재자연화’를 주장해온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재자연화 작업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점진적으로 전개됐다. 급격한 변화는 농작물 피해나 식수 오염 등의 부작용을 불러와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촉발할 수 있어서다.
우선 환경부는 2013년부터 낙동강 하구 기수생태계 복원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 용역부터 진행했다. 낙동강 물을 쓰는 부산시도 2015년 정부에 낙동강 하굿둑의 ‘점진적’ 개방을 요구했다. 생활·공업용수 원수를 채집하는 취수구를 낙동강 하굿둑으로부터 20~30㎞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이 끝나면서 수문 개방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지난해 4월26일~5월21일 낙동강 하굿둑 1차 시범 개방 뒤 낙동강 하굿둑 상류 3.9㎞와 7.9㎞ 지점에서 잡힌 뱀장어. 부산시 제공
지난해 4월26일~5월21일 낙동강 하굿둑 1차 시범 개방 때 수문을 통해 숭어 치어들이 낙동강 본류로 들어가고 있다. 부산시 제공
2019년부턴 수문 개방에 따른 염도 변화 등을 살피기 위한 실증실험이 진행됐다. 2019~2020년에 세차례, 지난해는 수문 개방 시간을 좀 더 늘려 네차례 실증실험을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염분 수치와 농업용수로 사용되는 지하수 수질의 변화가 작았다. 짧은 개방이었으나 기수역 어종인 장어·재첩·연어도 관찰됐다. 이에 힘입어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는 지난 2월 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시기인 대조기에 수문을 상시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낙동강 하굿둑 상류 12~15㎞까지만 바닷물이 흘러가는 조건이라는 단서는 달았다. 예상보다 더 깊이 짠물이 흘러들면 수문을 닫는다는 얘기다.
지난 5일 낙동강 하굿둑 상류 15㎞에 있는 대저수문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류. 상류에서 내려온 녹조 강물 때문에 대동화명대교 근처가 온통 녹색이다. 김광수 기자
이 결정에 따라 2월18일부터 6월2일까지 다섯차례 대조기 동안 수문을 모두 17차례 열었다. 수문 개방 시기 염도 변화 등을 측정해 보니 염도가 조금 상승하긴 했으나 위험 수위에 이르지는 않았다. 구체적으로 하굿둑에서 10㎞ 떨어진 지점에서 측정된 물의 염도는 최대 2psu(바닷물 1㎏에 녹아 있는 염분의 총량을 g으로 나타낸 것)에 머물렀다. 지하수 용존산소량(DO)과 수소이온농도(ph)도 수문 개방 이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수문 개방 뒤 염도가 이전(0.2psu)에 견줘 상승했으나, 관리기준(2psu)은 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4일 낙동강 하류 맨끝의 낙동강 하굿둑. 상류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적어서 6월3일부터 대조기에도 수문 개방이 어렵고 바닷물 유입도 힘들어 강물이 온통 녹색이다. 김광수 기자
그렇다고 재자연화를 위한 수문 개방이 순탄한 건 아니다. 당장 6월3일부터는 수문을 열지 않고 있다. 갈수기를 맞아 낙동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수량이 부족해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낙동강 물이 적으면 바닷물이 상류로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에 대조기라도 수문 개방이 어렵다”고 말했다. 반비례 관계를 갖는 재자연화와 염도를 놓고 섬세한 ‘균형 찾기’가 한창인 셈이다.
낙동강 하굿둑 수문 개방 수준을 놓고 벌이는 이 균형 찾기와 함께 새로운 대안도 모색되고 있다. 이준경 낙동강하구기수생태계복원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합천댐과 창녕함안보를 개방하면 낙동강 하류 염도를 다소 낮출 수 있다. 부산시 정수장 물의 취수지점을 현재 26㎞ 지점에서 36㎞ 지점으로 끌어올리고, 대저수문 취수원도 경남 김해시 대동면 운하천으로 변경하는 것도 수문 전면 개방에 따른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왼쪽 넷째)과 한정애 환경부 장관(왼쪽 다섯째)이 지난 2월18일 부산 낙동강 하굿둑 전망대에서 열린 ‘낙동강 하구 기수생태계 복원 비전 보고회’에서 대조기 때 열린 낙동강 하굿둑 수문을 통해 바닷물이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모습을 보면서 박수 치고 있다. 부산시 제공
부산시가 273억원(국비 기준)을 들여 대저수문 상부에 수문을 추가 설치하려는 것 역시 염도 피해를 줄이면서도 재자연화 수준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다. 이근희 부산시 녹색환경정책실장은 “밀도가 높은 짠물은 아래로, 민물은 위로 흐른다. 대저수문 하부 수문은 닫고 상부 수문만 열면, 민물만 서낙동강으로 유입돼 농작물 등에 피해는 발생시키지 않으면서도 낙동강 하류 부산권역에서 장어와 재첩을 볼 수 있는 장면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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